1939년부터 1945년간의 제2차 세계대전은 세계선교회로서는 참으로 혹독한 시험을 치루게 되었다.
세계선교회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정권 밑에서 법의 보호를 빼앗기고 큰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폭력과 유혈을 반대하는 우리의 확고한 입장뿐만 아니라, 우리의 안식일 준수는 히틀러의 숙적이었던 유대인들과
동일시되도록 만들었으므로 시련과 핍박을 자초하게 되었다. 세계선교회는 1933년 2월 28일과 1936년 4월 29일,
법령 1호에 의해 공개적으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었고 국가적인 원수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종교 활동은 금지되었고 모든 재산은 몰수를 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율법에 욕을 돌리기보다는 차라리 투옥과 고문과 죽임을 당하는
신실한 순교자의 피로써 그들의 역사에 인을 쳤다.
많은 이들은 투옥되었으며 많은 신자들이 그들의 확신을 생명의 피로 인쳤다.

그들은 ‘죽기까지 충성하’였음으로 그들에게는 승리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음을 믿는다.
이 든든한 진리의 수호자들이 하나님의 편에 있었음을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자.
참으로 그들은 나침반과 같이 참되고 진실되었다.
참으로 이들은 마지막 남은 백성으로서 미구에 경험할 일요일 강제 휴업령을 대비한 시험을 치른 것이었다.

잠시 모교회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에게로 눈을 돌려보자.
아돌프 히틀러 정권하에서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교회가 주장한 비전투원의 신조를 버리고 전투원으로서 국가에 등록되어 있었다.

1937년 1월 1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기관지인 ‘재림 기별자’에 프리덴사우에 있는
재림교회 지도자 양성학교의 학생들이 나찌 제복을 입고 학교 앞에서 나열하고 있었으며
정부관리가 그들을 검열하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그리고 이렇게 적혀 있었다:

“프리덴사우는 100% 총통을 지지하는 곳 중에 속한다.”

전 대총회장(왓슨)은 1931년에 한 질문에 이와 같이 답변했다:

“우리는 현 정부 하에 있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히틀러는 그의 권세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그 결과, 교회는 타협의 기반 위에 계속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타협은 너무나 값친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재림교회는 “세상 열왕들과” 관계를 맺었으며, 히틀러와 그의 군대를 위해 싸우며 죽어갔다.
다음과 같은 재림교회 기관지의 진술은 슬픔을 더해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급변하는 세계정세의 돌풍 속에 있다. 이러한 때에는 위대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
그러므로 우리는 복종만 할 뿐만 아니라 요구된 모든 임무를 즐겁게 수행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자신의 목숨을 잃는 자에게는 ‘자기의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람을 가진 자가 없나니’(요 15:3)의 말씀이 적용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군인들을 기억하며 특히 조국과 뒤에 남겨둔 자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형제들을
기억하자. 총통과 그의 동역자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자.”-재림 기별자, 1939년 10월 1일.

지금 하나님의 백성 앞에 드러나려고 하는 일요일 강제령의 마지막 큰 시험을 앞에 둔 우리에게는
가치있는 역사의 두 교훈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