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들에게 가장 복된 소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고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일 것이다.
태초에 아담은 범죄 하는 그날 정녕 죽어야 하였으나 죄 없는 한 마리의 양이 아담을 대신하여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는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아담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고 구원을 받는다.
이 복음은 말세에 이르러 더욱 완전하게, 더욱 밝은 빛으로 죄인들에게 비치고 있다.
1844년 세 천사의 기별을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진리는 영원한 복음으로 세상에 제시된바 되었으며
1888년에는 더욱 구체화 되고 더욱 아름다운 진리로, 능력과 힘을 가진 복음으로 당신의 교회에 나타난바 되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계 18:1)

가려뽑은 기별 1권, 372. -“여러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기별이 셋째 천사의 기별이냐고 편지로 나에게 물어 왔으며 나는 ‘그것은 참된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라고 했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0년 4월 1일).”

가려뽑은 기별 1권, 362. -“시련의 시기가 우리에게 임박하였는데 이는 죄를 사유하시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심으로 셋째 천사의 큰 외침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온 땅을 영광으로 환하게 할 천사의 빛의 시작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과 1888년에 제시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동일하다는 심증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심으로 셋째 천사의 큰 외침이 이미 시작되었다.’란 말씀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믿음으로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의(품성)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스도의 의가 무엇인가? 곧 죄 있는 육신을 가지시고 생각으로라도 범죄하지 않으시고 완전하신 품성을 계발하신 그분의 품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셋째 천사가 말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가질 수 있으며
죄 짓지 않는 생애를 살 수 있다는 기별이다. 이것은 ‘큰 외침’으로 전파되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을 것이다. 믿음으로 완전한 생애를 살 수 있다는 증거와 기별이 선포됨이 없이
어찌 완전하신 하나님의 율법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는가? 이 목적을 위해, 계시록 18장 천사는 내려와
‘온 땅을 그의 영광으로 환하게’하기 위하여 1888년부터 그의 사업을 시작하였다.

목사와 복음사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91. -“주님께서는 크신 자비를 베푸셔서 와그너와 존스 목사를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보내셨다. 이 기별은 들리움을 받으신 구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한
희생 제물에 관한 소식을 세상을 향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것은 보증물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도록 초청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야에서 잃어버렸다. 그들은 그분의 거룩한 인격, 공로,
인간 가족들에게 행하신 변함없는 사랑을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모든 권세가 그분께 주어졌으므로
그분은 인간들에게 풍성한 은사를 나누어 주시며,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그분 자신의 의를
속절없는 인간 대리자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전파하도록 명하신 기별이다.
이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며, 이 기별은 큰소리로 전파되고, 크나큰 성령의 부어지심이 수반될 것이다.”

1888년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마지막 교회에 보내셨다.
이 말씀 가운데 제시된 중요한 약속과 허락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온 세상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

2.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제시함

3.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도록 초청함

4. 이 기별은 세상에 전파 하도록 명하신 기별임

5. 이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과 동일하며

6. 크나큰 성령이 부어주심이 수반될 것임

두 사자들을 통하여 허락된 말씀은, 온 세상을 위하여 희생제물이 대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칭의를 얻게 되고
칭의를 얻은 영혼들은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그리스도의 의, 즉 완전하신 품성을 얻으라는
초청의 기별이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기별이며 이 기별이 진실로 셋째 천사의 기별이요, 늦은비 성령이 수반될 기별이었다. 이처럼 소중한 기별을 1888년 마지막 교회에 보내주셨다.
그러나 이 기별은 새로운 기별이 아니라.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시야에서 잃어버린 기별이었는데,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었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9. 8. 13.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교리를 그들의 시야에서 잃어 버렸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9. 9. 3. -“우리의 현세와 영원한 복락을 위하여 그렇게도 요긴한
이 주제(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진리를 스스로 이해하는 사람은 백 명 중에 한 사람도 없다.”

오늘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매우 혼란스럽다. 거듭남의 경험이 없는 소위 신학자들과 목사와
지도자들에 의하여 진리는 이론화 되고 형식화 되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복음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의 곧,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품성으로 영혼들을 초청하지 않는 복음은
모두 거짓 복음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백성들이 지금 이와 같은 복음을 시야에서
잃어버리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연구하는 자들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는 자들은 백 명 중에 한 명도 없다고 하셨다.

가려뽑은 기별 3권, 184. -“왜 우리의 입술은 그리스도의 의의 주제와 세상을 위한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그렇게 침묵하는가?”

리뷰 앤드 헤랄드, 1890년 8월 19일. -“행복은 거룩함과 하나님의 뜻에 일치한 결과이다.
하늘에서 성도가 될 사람들은 먼저 지상에서 성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이 지구를 떠날 때
우리의 품성을 가지고 갈 것이며 이는 단지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우리에게 나누어진 하늘의 요소들 중
어떤 것을 가지고 가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3기별, 191).

목사와 복음사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233.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지체하지 말고
등불과 함께 기름을 확보하도록 영혼들에게 간청해야 할 때이다. 그 기름은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것은 품성을 대표하며, 품성은 전가될 수 없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품성을 획득할 수 없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의(품성)에 대한 주제에 대하여 이상하리만큼 침묵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지체하지 말고 기름(품성)을 확보하도록 영혼들에게 간청해야 할 시기가 아니겠는가?
그리스도의 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품성으로 영혼들을 초청하지 않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가르침은
심판의 날 영혼들로 하여금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나게 할 것이다.

선지자와 왕, 188. -“모든 영혼들에게 시험이 닥쳐 올 시간은 멀지 않았다.…
참 경건은 겉치레만의 경건과 분명히 구별될 것이다. 그 찬란함 때문에 우리들이 감탄해 왔던 많은 별들이
그때에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성소의 장식품으로 꾸몄으나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지 않은 사람들은
그 때에 자신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낼 것이다.”

매 영혼들마다 최후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그 때에는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은 확연히 구별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의를 다만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던
영혼들은 그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참된 증인의 권면은
그리스도의 의를 장식이 아닌 우리들의 품성으로 옷 입으라는 초청을 하고 있다.

편지 24, 1892. -“라오디게아교회에게 보내는 기별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 왔다. 이 기별을 모두 다 취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가 길을 열어주는 곳에는 어느 곳에서나 백성들에게 그 기별을 전하여야 한다.
믿음으로 받은 칭의와 그리스도의 의가 멸망해 가는 세상에 전해져야 할 기별의 주제이다.”(화잇주석, 계 3:15-21).

그리스도의 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품성으로 영혼들을 초청하지 않으면서도 의롭다고 주장하며 가르치는 자들은 죄악의 편에서 일하고 있으며 사단을 기쁘게 하고 있다.

목사와 복음사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236. -“그리스도의 원수는 많이 있는데, 그들은 의롭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지 못했다. 그들은 빛의 천사로 가장하지만 죄의 봉사자들이다.”

복음 사역자, 161.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것은 우리의 공로로 인함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값없는 선물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귀한 생각인가!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 마귀는 사람들이 이 진리를
충분히 받아들이면 자기의 힘이 무력하여질 것을 알므로 이 진리가 명백히 소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품성으로 영혼들을 초청하지 아니하면 율법을 높이는 일은 불가능하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원고 5, 1893.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지 않으면 여호와의 율법을 높이는 일이 불가능하다.”
(화잇주석, 롬 3:31).

시대의 소망, 283. -“유대인들에게 위탁된 제도 중에 안식일만큼 그들과 주변국들을 철저하게 구별시킨 제도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준수로 그들이 당신의 경배자로 일컬어지도록 계획하셨다.
안식일은 우상숭배로부터의 그들의 분리와 참 하나님과 연결된 표징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 자신이 거룩하게 되어야 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하였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이 이스라엘에게
내려졌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또한 그들에게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라고 말씀하셨다(출 20:8, 22:31).
이렇게 되어야만 안식일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경배자로 구별(區別)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품성으로 영혼들을 초청하지 아니하면 죄의 도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 아버지께 나아가려는 자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들의 신임장으로 가져야만 한다.

각 시대의 대쟁투, 483. -“그러나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그들의 속죄 제물로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 아래 용서받았다는 말이 기록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들의 품성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된다는 것이 나타날 때,
그들의 죄는 도말되고 그들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74. -“율법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아야 하며
그 의를 우리들의 의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의를 받아들임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행할 수 있는 자격과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
만약 우리들이 하늘 아버지께 나아갈 통로를 찾으려면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들의 신임장으로 가져야만 할 것이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의를 얻기 위하여는 매일 성령의 감화로 말미암아 변화함을 입고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가 될 필요가 있다.

선지자는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타락한 바벨론 교회들에게서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세상은 구원에 이르는 확실한 복음을 듣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으며 생명력 있는 진리를
찾기 어려운 세대가 되어 버렸다. 주님께서는 이미 이와 같은 마지막 때를 보시고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고 하셨다.

여러 가지 견해들

말틴 루터를 위시한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이 깨닫고 가르쳤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셋째 천사의 기별이 말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다른가, 아니면 같은 기별인가?
만약 전혀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셋째 천사의 기별은 16세기부터 전하여 졌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혼란해 한다. 물론 기별이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차이점이 있어야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사업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오늘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사업과 조화를 이루는 일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성소는 뜰과 성소(첫째 칸), 지성소(둘째 칸)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봉사하시는 장소와 위치에 따라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더욱 완전하게 교회에 계시되었다. 중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특히 하늘 성소에 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다.

16세기 말틴 루터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중심교리는 성소 뜰에서 비쳐오는 진리이다.
죄인들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진리가
그 당시에 그들이 깨달은 빛이었다. 그리고 18세기에 이르러 J. 웨슬리와 같은 개혁자들이 주장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중심교리는 16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이 깨달은 칭의 교리의 바탕 위에
성소의 첫째 칸이 간직하고 있는 성화의 진리가 첨가되어‘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의 빛은 더욱 밝아졌다.
드디어 19세기에 이르러 셋째 천사의 기별과 함께 하늘 지성소의 완전함의 진리가 과거의 모든 개혁자들에 의하여 밝혀진 진리와 연합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교회에 완전하게 공개되어 나타났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하늘 성소진리와 합병되어져야 하며
셋째 천사가 가리키는 하늘 지성소와 조화되게 가르쳐져야 한다. 오늘날 백성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의 견해로 요약할 수 있는 것 같다.

1) 일반적인 견해

칭의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과거의 죄에 대하여 완전한 용서를 받게 되며 그 공로는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에게 있다고 믿는다. 회개와 자복으로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할 때 거듭난다고 믿으며
이것을‘칭의’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순간적인 경험이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의 자격이라 믿는다.

성화 -의롭다함을 받은 영혼은 거룩한 생애, 곧 율법에 대한 순종의 의무를 갖게 되며
천국에서 살기 위한 적합성을 키우기 위한 준비라고 믿는다. 율법에 대한 순종의 동기는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자발적인 순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온전함 -성화는 일평생의 경험이며 율법을 순종하는 생애 가운데 실수할 수 있으며 이러한 죄들은
회개와 자복으로 용서 받을 수 있으며 최선을 다한 후에 부족한 부분은 그리스도가 채워주심으로 완전함에 이른다.

이와 같은 견해는 대부분의 재림신자들이 믿고 있는 전통적인 견해이며 이론적으로 건전하며
현실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화의 생애 속에 실수할 수 있는 생애가
일평생 지속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부족이 나타나고 그리스도께서 채워주셔서 완전함에 이른다는 생각은
하늘 성소진리와는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왜냐하면 셋째 천사는 하늘 성소 중 지성소를 가리키고 있으며
그 곳에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중보하고 계신다.
이제 백성들은 모든 것이 완전한 지성소에서 주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2) 새로운 신신학적인 견해

칭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그 공로에 의하여 믿는 죄인들은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에 이른다고 말한다. 칭의는 과거에 지은 모든 죄의 용서는 물론 미래에 지을 모든 죄들까지 포함하며 완전한 용서와 함께
완전히 의롭다는 선고이며 천국을 얻을 수 있는 완전한 자격을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하여 믿는 자에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합법적인
선고이므로 구원은 성화와 완전함과 같은 신자들의 경험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화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생애를 살고 율법을 순종해야 하지만, 그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자발적이고 저절로 나타나는 행위이며 생애일 뿐, 이미 얻은 구원과 무관하다는 가르침이다.

온전함 -성화의 생애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며 구원받은 사람들의 생애에서 나타나는 결과요 열매이다.
거듭난 영혼들도 여전히 죄 있는 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으며,
그 이유로는 율법은 우리의 행위뿐만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까지도 정죄하며 비록 죄를 짓지 않았지만,
어떤 환경에 이르러 죄를 지을 가능성까지도 정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구원은 오직 칭의로 이루어지며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완전한 구원을 얻었으므로
공연히 구원과 무관한 성화와 완전함에 대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새로운 신신학적 견해는 일반적으로 재림교회에서 가르치는 전통적인 견해에서 비롯된
율법주의적 개념에서 해방시켜주었고 영혼들로 하여금 재림교회 안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구원의 기쁨과
희열을 누리게 하였다. 그러나 영혼들에게 자유방종의 길을 열어주었고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으로 생각하는
타락한 일반 개신교회들에서 가르쳐지는 신신학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재림교회가 16세기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경험을 잃어버리고 다만 복음이 이론과 형식화되어
율법주의적인 성향으로 기울어져, 교회는 라오디게아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다.
새로운 신학은 이와 같이 라오디게아 상태에 빠진 재림교회의 결함을 보충하기 위한 시도였으나,
또 다른 사단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하늘 성소진리를 외면함으로 말미암아 16세기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복음과 ‘진실로 셋째 천사의 기별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복음과의 차이를 식별하는데 실패하였다.

2,300주야에 정결하게 되는 하늘 성소의 진리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죄의 생애가 끝나고 완전하게 되어야 성취된다는 진리를 간과해 버렸다. 이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하늘 성소의 진리가 합병되지 못한 결과이다. 그 결과 재림교회의 독특한 진리들을 외면하고 무관심에 빠져
율법의 표준은 낮아지며 성도들의 경건성은 현저하게 떨어져 또 다른 라오디게아교회의 상태로 전락해 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는 선고가 내릴 때 거룩한 자로 주 앞에 서지 못하고
구원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