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J. 와그너의 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복음에 관하여 말씀하려고 하는 모든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복음은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나 다만 "모든 믿는 자"들에게만 구원을 주는 능력이 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완전한 율법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의로운 뜻의 사본이다. 모든 불의는 다 죄이며 불법이지만, 복음은 그 죄를 치료하는 하나님의 치료제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과 조화를 이루도록 역사하며 그들의 생애에서 의로운 율법이 나타나도록 해준다.
    이 역사는 모두 다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면서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마치면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v 이 말씀은 인간이 타락한 이후, 어느 시대에나 항상 같은 진리이며, 하나님의 성도들이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을 직접 만날때까지 변함이 없을 진리이다.
    사도 바울은 선지자 하박국이 한 말씀을 여기에서 인용하고 있다(합 2:4).

    만일 구약의 선지자들이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면 그때에는 구약 성경 밖에 없었기 때문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먼 태고시대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에 대하여 불완전하게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그때에는 의인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바울은 태초로 돌아가서 구원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의 예를 들고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히 11:4), 또 노아에 대해서도 그가 믿음으로 방주를 만들어
    그의 집을 구원하고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고 말했다(히 11:7).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었으며, 그리고 예수의 이름 외에는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이다(행 4:12).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지난 날의 생애의 죄에 대하여 용서받을 필요를 깨달았을 때에, 행사했던 믿음의 힘으로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살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으며 그리고 이 용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일단 경주가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그들 자신의 힘으로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은 첫째로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내가 직접 들었기 때문이며,
    둘째로 그들 자신의 능력보다 더 큰 능력을 나타내는 행위를 보여주지 못하는 이런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집회에서 입버릇처럼 늘 하는 말이 있다면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라고 말하면서 처음 믿었을 때에 있었던
    과거의 체험이나 기쁨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러나 현재 나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기쁨이나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쁨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 그들에게는 다른 나라의 방언을 듣고 있는 느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믿음의 문제를 분명하게 영광의 나라와 연결시키면서 믿음과 같은 아주 힘있는 실례를 들어 말하고 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5,6).

    에녹이 믿음으로 옮기워졌다는 것을 입증하는 말씀에 유의하여야 한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증거를 받았기 때문에 옮기어졌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것으로 에녹이 믿음으로 옮기어졌다는 문제가 충분히 입증된다.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행위를 하나도 할 수 없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선한 행위라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완전한 의에 전혀 이를 수가 없다.
    참된 믿음을 가졌다면 그것은 매우 귀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의 죄짐을 가져가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아무리 좋았을지라도,
    그 믿음이 그의 은혜의 시간이 마치기까지 계속 증가하지 않으면 그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의롭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애가 매우 만족스럽지 못하고 실패로 얼룩져 있기 때문에 실망이 되어 자포자기하고 싶은 생각을 한다.
    그들이 실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계속 실패하면 실망할 수 밖에 없다.
    세상에서 아무리 용감한 군인이라 할지라도 만일 그가 싸움터에 나가서 계속 싸움에 지기만 한다면 낙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무능함을 보고 한탄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불쌍한 영혼들이 자신을 참으로 신뢰하지 않고, 저희 자신을 능히 구원할 수 있는 분을 완전히 신뢰한다면 전혀 다른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롬 5:11).
    사도 바울은 말한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비록 시험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 중에라도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신뢰와 패배의 가련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이다.
    최후에 받을 행복에 대한 모든 약속은 이기는 자들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계 21:7). 이기는 자는 승리를 얻은 자이다.
    유업을 얻는 것은 승리를 얻는 것이 아니고 승리에 대한 보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승리는 지금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얻어야 할 승리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한 승리이며, 우리 자신과 자기 방종에 대한 승리이다.
    이러한 원수와 싸워서 이길 때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다. 아무도 그가 기뻐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원수가 굴복하는 것을 볼 때 기쁨이 마음에서 저절로 솟아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적인 자아와의 싸움과 세상적인 욕망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두려움으로 바라본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까지 승리의 기쁨을 전혀 알지 못하고 실패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승리할 때에 계속 싸운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모든 싸움에서 승리한 백전 노장은 싸움터에 나가기를 원한다.
    알렉산더의 군사들은 그의 지휘 아래서는 패배를 몰랐었기 때문에 항상 앞장서서 싸움터로 나아갔었다고 한다.
    승리할 때마다 의기 충천하여 힘이 더욱 생겼고 이와는 반대로 패배한 적은 의기소침하여 힘이 더욱 없어졌었다.
    그러면 영적인 싸움에서는 어떻게 하면 계속 승리할 수 있을까? 사랑의 제자 요한의 말을 들어 보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다시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여기에 능력의 비결이 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고 그 능력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만일 그가 우리의 마음에 계시면서 그의 일을 하신다면, 계속 승리할 수 있다. 이것은 자랑할만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 그것은 자랑할만한 일이다. 이것은 주 안에서 자랑하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라고 말했고(시 32:2),
    바울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말했다(갈 6:14).

    알렉산더의 군대는 백전백승의 군대로 생각되었다. 왜 그러했는가? 그것은 그들이 원래부터 그들의 모든 적들보다 더 강하고 용맹스러웠기 때문이었는가? 아니다.
    그들이 알렉산더의 지휘를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힘은 알렉산더의 지도력에 있었다.
    그들이 다른 사람의 지도하에 있었다면 자주 패배했었을 것이다. 유니온 군대가 윈체스터에 있는 적 앞에서
    벌벌 떨면서 패주하고 있을 때에 쉐라톤 장군이 나타나서 그들의 패주를 승리로 이끌었다.
    만일 그가 없었더라면 그 병사들은 우왕좌왕 하는 폭도들에 불과하였을 것이지만 쉐라톤 장군이 진두 지휘하면서부터는 무적의 군대가 되었다.
    전쟁 후에 그러한 장군의 지휘하에서 싸웠던 병사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입이 마르도록 그들의 장군을 찬양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강했고 그 장군과 같은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의 대장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모든 원수의 두목을 만나서 한 손으로 정복해 버리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를 따르는 자들은 싸움터에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겨야 할 것이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신뢰할 것이며 그후부터는 계속 승리를 하면서 그들을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하신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아름다운 덕을 찬양할 것이다.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믿음을 통하여 세상을 이긴다고 말한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팔을 붙들면, 그의 크신 능력이 그 일을 한다.
    아무도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 안에 어떻게 역사하고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이룬다는 것을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죽은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없는가를 말하는 것이 오히려 쉬울 것이다.
    예수님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말씀하셨다.(요 3:8)
    성령이 어떻게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욕심을 극복하고 자만심과 시기심과 이기심에 대하여 승리하게 되는가 하는 것은 성령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로서는 이미 이 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무엇보다도 이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 안에서 이루어질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베드로가 주위에서 파도가 치고 있을 때에 어떻게 하여 물위로 걸어갈 수 있었던가를
    설명할 수는 없으나 그가 주님의 명령을 따라 물위로 걸어갔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가 눈을 계속 주님에게 고정하고 있는 동안은 발밑에 견고한 바위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쉽게 걸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처럼
    그가 하고 있는 일에 자만심을 가지고 물위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자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믿음은 그가 물위로 걸어가는 것을 가능케 만들었지만 두려움은 그를 물속으로 가라앉히게 하였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히 11:30)
    왜 이 말씀을 기록하였는가?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우리가 무장한 군인들과 싸우고 견고한 성을 빼앗도록 부름을 받게 될 것인가? 아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니라."(엡 6:12)
    그러나 볼 수 있는 육신의 원수들에 대하여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얻은 승리를 기록한 것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의 싸움에서 믿음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육적인 싸움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싸움에서도 강력한 능력이 된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3-5). 옛날 믿음의 조상들이 믿음으로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육적인 원수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웁고 용기를 주는 것은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라는 말씀이다(히 11:33,34).
    그들의 약함은 바로 믿음을 통해서 그들에게 능력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송사할 것인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37)
    (영문시조 1889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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