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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이 아니요 경험이 요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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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계 14:6-7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재림 성도들이라면 세 천사의 기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별의 중요성과 귀중성에 대하여 마땅히 깨달아야 할 만큼의 엄숙함을 깨닫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세 단계로 되어있는 첫째, 둘째, 셋째 천사의 기별을 보았다. 나와 함께 한 천사가 말했다.
이 기별들에 일 점 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빼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이 기별들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모든 영혼들의 운명은 이 기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있다. 나는 이 기별의 시종(始終)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는 경험들을 보았다.
그들은 심한 투쟁과 고난을 치루었다. 그들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토대 위에 세워지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발걸음을 끊임없이 인도하셨다." 초기, 258-259
주의 종은 말하기를 ‘이 기별들을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모든 영혼들의 운명은 이기별을 받아드리는 태도에 달려있다.’ 라고 하였다 .
이처럼 중요하고 운명이 달린 세 천사의 기별에 대하여 모든 재림신자들은 과연 얼마나 이 기별에 대한 중요성과 엄숙함을 깨닫고 있는지!
마땅히 깨달아야 할 만큼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지 재림신자들이라면 되 새겨 보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이기별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영혼들의 운명이 이 기별을 받아 드리는 태도에 달려있다는 말씀을 우리는 피상적으로 읽고 넘어가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한다.
‘운명이 달린 기별’이란 생과 사를 결정짓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서 실로 세 천사의 기별이야말로
얼마나 엄숙하고 놀라운 기별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세 천사의 기별 가운데 있는 완전한 진리의 연결을 보고 그 순서대로 즐거이 받아들여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하늘 성소로 들어갔다. 이 기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닻이 된다고 하였다.
이 기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자들은 사단의 수많은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초기, 256
세 천사의 기별은 완전한 진리이며 순서적으로 받아들여 예수님을 따라 하늘성소로 들어가도록 하는 기별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은 경험이 이루어진 영혼들에게는 세 천사의 기별은 닻이 되어 수많은 사단의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애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완전한 진리는 그 진리를 믿는 자들을 완전하게 할 것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1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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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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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천사의 기별은 완전한 진리이다.
그러므로 이 진리는 믿는 자 들에게 완전함을 줄 수 있는 기별이며 거룩함을 얻게 하는 기별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 유케 하리라.” 진리는 자유를 얻게 한다.
진리는 그 진리를 믿는 자들에게 자유를 누리게 한다.
진리는 어떤 자유를 믿는 자들에게 주는 것일까? 또 무슨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는가?
성경에는 말씀하시기를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요일 3:8),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롬 6:16) 고 하신다.
모든 인류는 죄를 지었으므로 마귀의 종들이 되었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롬 6:17) 성도들이시여
죄의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되고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시는지? 완전한 진리가 여러분들에게 참된 자유를 줄 것이다.
그리고 죄 짓는 일로부터 해방의 기쁨을 경험하게 한다. 참으로 죄 짓는 일로부터 자유를 누리며
의(義) 의 경험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야말로 진리가 무엇인지 아는 자들일 것이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형제자매들이시여 세 천사의 기별은 완전한 진리임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이 완전한 진리가 우리를 죄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고 있는지?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 세 천사의 기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완전한 진리에 의하여 주어지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5-16
왜 이와 같은 책망이 우리에게 필요한가?
그것은 완전한 진리인 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있으면서도 그 기별에 합당한 생애를 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8
완전한 진리는 그 진리를 믿는 자 들에게 완전한 생애를 요구한다.
완전한 진리는 사람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으로써 신비한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완전한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지?
우리는 참으로 세 천사의 기별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완전한 진리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영혼들을
사단은 끊임없이 미혹 할 것이며 그들은 마치 닻이 끊어진 배와 같이 흘러 떠내려 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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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요구되는 기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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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 전했던 두 천사의 기별을 체험하지 못하였다.
사단은 그것을 알고 그의 악한 눈을 그들에게 돌려 저들을 넘어뜨리려 하였다.
그러나 셋째 천사는 저들을 지성소로 향하게 하였으며 과거의 기별들에 경험을 가진 자들은 그들에게 하늘 성소의 길을 가리켜 주었다." 초기, 256
세 천사의 기별은 단순히 이해하고 깨닫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해야 하는 기별이다.
이 기별들은 이론이 아니요 체험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미 셋째천사의 기별을 받아드린 자들 가운데는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하지 못한 체 많은 사람들은 셋째천사의 기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많은 재림신자들은 사단의 미혹을 피할 길이 없으며 죄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뜨뜻미지근한 상태가 되어버린 참된 이유가 바로 그 기별들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두 천사의 기별을 경험했다면 그 기별들은 영혼의 닻이 되어 수많은 사단의 미혹으로부터 보호를 받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 천사의 기별 가운데 있는 완전한 진리의 연결을 보고 그 순서대로 즐거이 받아들여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하늘 성소로 들어갔다. 이 기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닻이 된다고 하였다.
이 기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자들은 사단의 수많은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초기, 256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두 천사의 기별들을 경험해야 한다.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그 기별을 받고
그것에 따라 사는 사람들로부터 그 기별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초기, 188
"모든 영혼들의 운명은 이 기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있다.
나는 이 기별의 시종(始終)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는 경험들을 보았다." 초기, 258-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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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천사의 경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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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천사와 둘째 천사는 1833-1844년까지의 재림성도들이 경험하였던 일들이었으며
지금으로부터는 약160년 전의 역사이다.
그러면 16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지금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라고 의아해 하실는지 모르나
그때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은 지금도 공중을 날아가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의 사업을 마치실 때까지
이 천사들은 공중을 날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기별인 것이다.
우리들은 1844년 당시 재림성도들은 어떤 경험을 하였는지 연구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일이며 운명을 결정지을 만큼 귀중한 연구주제이다.
하늘나라보다는 이 세상에 더 많은 애착을 갖고 살아가던 당시 명목상의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1844년 3월22일 재림하실 것이라는 윌리암 밀러의 기별이 그들의 마음에 별로 기쁨이 되지 못하였다.
당시에든 오늘날이든 부귀영화와 세상에 애정을 둔 신자들에게는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재림기별은 결코 기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참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늘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그보다 더 큰 복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리라는 재림 기별은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 전파되었고 그 누구도 이 기별을 막을 수 없는 능력과 힘을 가지고 전파되었다.
1844년 3월22일이 점차 가까워 옴에 따라 이 기별을 믿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경험들을 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생애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어떠한 변화이며 경험들이 그들에게 있었겠는가? 주의 종은 당시의 그들의 경험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기별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울면서 용서를 구했으며, 부정직하게 살아온 자들은 원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애썼다.
부모들은 그들 자녀들의 구원을 위하여 애를 태웠다" 초기, 232-233
"죄인들은 울면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하였다.
부정직한 생애를 하여 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입힌 손해를 보상하고자 열망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를 원하였다.
부모의 마음은 그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은 그 부모에게로 돌아갔다. 자존심과 장벽은 없어졌다.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였고, 가족들은 모두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따금 가장 열렬하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나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탄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확증을 얻기 위하여, 또한 그들의 친척과 이웃 사람들을 회개시키고자 밤을 새우면서 기도의 씨름을 하였다." 쟁투, 369
"진실한 신자들은 마치 죽는 사람이 임종시에 몇 시간 동안 세상 사물을 초월하여 명상하는 것처럼
자기들의 마음속의 생각과 감정을 살펴보았다. 승천 예복은 전혀 만들지 않았다(부록 30 참조).
그러나 구주를 영접할 준비가 되었다는 내적 증거의 필요성, 곧 그들의 심령의 순결을 나타내는 흰옷,
그리스도의 속죄하시는 피로 죄에서 깨끗하게 된 품성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쟁투, 373
이들의 경험이 무엇이었는가? 사랑하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그들은 자신의 심령을 정결하게 하는 일이 필요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철저하게 자신을 살피며 회개하는 일과 심령의 순결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였던 것이다.
재림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가는 재림성도 들이여 우리들의 심령은 순결한가?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죄를 찾을 수는 없는가?
혹시라도 부정직하게 살아온 생애는 없으며 이웃들과의 거래관계에는 깨끗한가?
만약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회개하지 않는 죄악이 발견된다면 아직도 첫째천사의 기별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셋째천사의 기별을 받고 침례를 받은지가 수십 년이 된다고 할지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아직도 첫째천사의 기별도 받은 자가 아닌 것이다.
얼마나 많은 오늘날 재림신자들이 첫째천사의 피상적이고 이론적인 지식과 역사와 예언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첫째천사의 기별은 경험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천사의 경험이 없는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니 내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는 선고인 것이다.
오늘도 공중을 날아가고 있는 첫째천사는 우리로 하여금 회개 할 것이 없는 회개의 경험을 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 전했던 두 천사의 기별을 체험하지 못하였다.
사단은 그것을 알고 그의 악한 눈을 그들에게 돌려 저들을 넘어뜨리려 하였다." 초기, 256
첫째천사의 경험이 없는 영혼들은 사단의 공격의 표적이 될 것이며 죄의 투쟁에서 승리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과연 나는 첫째천사의 경험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해 보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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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천사의 기별은 거듭남의 기별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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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천사의 기별은 진정한 거듭남을 경험하게 하는 기별이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니고데모처럼 참된 거듭남의 경험이 없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
참된 칭의의 경험이 없으면서도 의인들의 흉내를 내면서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아직 죄인 그대로 있으면서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금을 바치며 선한사업에 동참하고 육식을 금하면서 의인들의 흉내만 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원숭이가 사람의 흉내를 잘 내고 사람들처럼 생활한다고 하여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야 사람인 것처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을 하고 교회를 다녔다 한들 아직 죄인인 것이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거듭남은 우리 시대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진귀한 경험이다. 이것이 교회 안에 어려운 일이 그토록 많은 이유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성화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은 침례를 받았지만 산 채로 장례를 치루었다. 자아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산 생명으로 일어나지 못하였다(원고 148, 1897). ”(화잇주석, 롬 6:1-4)
“침례는 아주 엄숙하게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다. 신앙 고백으로 자아는 죄된 생활에 대하여 죽는다.
물이 수침자를 덮을 때에 온 하늘이 보는 앞에서 쌍방이 언약을 맺는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는 물 무덤으로 내려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새로운 생명으로 무덤에서 일어난다.”
(화잇주석, 롬 6:1-4)
첫째천사의 기별을 경험하지 않고 철저한 회개의 경험과 죗된 생활을 버리지 못하였다면
아직도 거듭난 것이 아니며 죄인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라는 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죄와 의가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은 빛과 어두움이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죄의 누룩을 가지고 있으면서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은 마른 밀가루가 누룩이 없이 부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재림성도들이시여 첫째천사의 기별을 경험하므로 진정으로 거듭남을 체험하여야 한다.
철저한 회개의 경험이 없이 죄의 누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안식일을 지키고 의로운 흉내를 내면서
믿음으로 구원 얻기를 기대하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실로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죄를 덮어주는 가면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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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에는 예수님이 오시는 기별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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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암 밀러가 첫째천사의 기별을 전파한 시기는 1833년 그가 속하여 있던 침례교회로부터 설교를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음으로 서부터 그 기산점을 잡을 수 있다. 이미 그전부터 첫째천사의 기별은 전해졌으나 그전에는 밀러의 개인적인 노력과 사업이었다면 1833년부터는 그 기별이 교회적인 사업과 기별로서 크게 외쳐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윌리암 밀러를 통하여 첫째천사의 기별을 받았을 때에는 예수님의 재림은
이미 10년 앞으로 닥쳐와 있었다. 10년밖에 남아있지 않는 세상에 어떤 소망과 희망을 가질 것인가?
그러므로 이 기별을 확실하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생애의 계획과 목적과 동기가 바뀌어 지기 시작 하였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들의 미음 속에서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세상에 대한 모든 애정은 사라졌다.
이제 10년이면 세상은 끝이 날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들의 마음에는 재물에 대한 욕심도 권세에 대한 욕망도 모두 사라졌다.
쾌락도 그들에게는 별로 매혹적인 것이 아니었고 세상의 명예도 그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들의 유일의 관심사는 그 날에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었다. 모든 사업과 경영도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세워졌으며 삶의 목적은 오직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분을 만나기 위하여 준비하는 일이었다.
10년 후에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이었다.
재림성도들이시여 첫째천사의 기별은 10년 후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기별이다.
세상이 10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신앙자세가 바로 첫째천사의 기별을 깨닫는 영혼들이 갖는 믿음이다.
10년밖에 남아있지 않은 세상에 무슨 미련을 가질 것인가? 그러므로 아직도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첫째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물질과 명예와 권세를 얻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고 있는 영혼들은 아직 첫째천사의 기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하여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일에 실패하면서 살아가는 영혼들은 첫째천사의 기별을 경험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첫째천사의 기별은 예수님의 재림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재림성도들이시여 지금도 첫째천사는 공중을 날아가고 있다. 이들의 경험은 우리의 경험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아직도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과 세상의 그 무엇에 미련을 가지고 있다면 첫째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며 경험한 것이 아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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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하고 엄숙한 책망을 받아들이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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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19-20
왜 주님께서 문밖에서 서 계실까? 왜 우리의 마음의 거실로 들어오시지 않고 문밖에서 두드리고 계시는가?
우리들은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지금 들어오세요. 환영합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한지도 벌써 오래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주님은 문밖에 서서 계신다.
주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에 들어오시지 못하는 이유를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주님께서 문 밖에 서서 계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차갑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는 미지근한 상태는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 상태요
토하여 내침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아직 우리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기다리고만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문밖에 서 계시는 상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
사실은 구원 얻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상태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공공연한 죄인보다 더 희망이 없는 상태에 처하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오디게아 교회의 참된 증인께서는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공공연한 죄인들은 오히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양심으로 인정하고 있기에 회개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미지근한 상태에 있는 자들은 다른 어떤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여 볼 때
크게 부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애는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해야할 필요성도 자신이 큰 죄인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구원 얻기 어려운 사람들일 것이다.
이것이 사단의 가장 무서운 기만이다. 오늘날 라오디게아교회는 행동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상의 치명적인 혼수상태는 그대들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대들이 사단에 의하여 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죄가 더 이상 불쾌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미구에 지상에 쏟아지려 하고 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창 19:17)는 말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한 경고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다른 음성도 들린다. '흥분하지 말라. 특별히 놀랄 이유는 없다.
'하늘은 범죄한 자에게 신속한 멸망이 바야흐로 임한다고 선포하고 있는데, 시온에서 안락하게 있는 자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부르짖는다.
젊은이들, 경박한 자들,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 경고를 쓸데없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조롱하면서 돌아선다." 교회증언5권 233.
"셋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는 일에 열성적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무관심하고 냉담해져 있다는 것은 숙연하고 두려운 일이다.
세속적인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과를 구분하는 선은 거의 분별할 수 없다.
한때 열렬했던 많은 재림신자들이 세상과 일치되어 있다. 곧 세상의 습관과 그 풍습과, 그 이기심과 일치되어 있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도록 세상을 지도하는 대신에 교회가 불법을 통하여 세상과 점점 더 가까이 연합하고 있다.
날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변해 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공언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물의 노예가 되어 있는가!
그들의 식욕의 방종, 이기적 만족을 위한 엄청난 금전의 지출은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훼손시킨다." 8증언, 118
"하나님의 명백히 드러난 뜻을 거스려 행함으로 그분께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자기에게 진리가 있고, 자기야말로 유일하게 확실한 기초 위에 서 있고,
하나님의 사업의 어떤 부분에 활동적으로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일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신다고 스스로 아첨하는 것보다도
더 크게 인간의 마음을 기만할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그들은 마치 기계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 품성의 성화가 부족하다. 신성하고 거룩한 일이 평범한 것 수준에까지 떨어졌으며,
속됨과 천박함이 우리 교회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 예배는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타락하고 있다.
표준을 높여야 한다. 더욱 차원 높게 행동해야 한다. 세상 관습과 행위로부터 나와야 하며, 분리되어야 한다.
목사들과 백성들은 더욱 높은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 목사, 451
"하늘의 교사께서는 이렇게 물으셨다. 사실상 그대들이 세상의 정책을 따라 많은 일들을 함으로 여호와께 범죄하고 있으면서도
그대들이 올바른 기초 위에 세우고 있으며 하나님이 그대들의 업적을 받아 주신다고 가장하는 것보다 마음을 속일 수 있는 더 강력한 기만이 있겠는가?
한때 진리를 안 사람들이 경건의 모양을 경건의 영과 능력으로 오해할 때, 그들이 사실은 모든 것에 궁핍하면서도
부자라 부요하다고 생각할 때,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아, 큰 기만, 매혹적인 미혹이다.
옷을 흠없이 지키고 있는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홀연히 멸망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동안 '평안하다 안전하다'라고 외치고 있다.
철저한 회개가 없는 한,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므로 그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들은 결코 하늘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8증언, 249-250
첫째천사의 기별의 가장 큰 목적을 영혼들을 회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재림성도들이시여 이와 같은 단호하고도 엄숙한 책망을 겸비한 마음으로 받아드리자.
우리들의 희망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참된 증인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 첫째 천사는 지금도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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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 받은 바벨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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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둘째 천사의 기별을 중심으로 우리들이 취해야할 현대 진리와 교훈을 얻도록 하겠다.
둘째 천사는 첫째 천사의 뒤를 따라와서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기별을 외치고 있다.
둘째 천사가 무너졌다고 선고한 바벨론은 어떤 성인가?
물론 다니엘 시대의 느브갓네살왕이 통치하던 바벨론도성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 도성은 무너지고 역사의 무대에서 살아진지가 오래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바벨론은 로마천주교회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왜 로마천주교회를 바벨론 이라고 하는가?
간단히 한마디로 대답하기에는 글자가 의미하는 것 같이 쉽지가 않을 것이다.
‘바벨’이라는 말의 의미가 혼잡이기 때문이다. 혼잡한 것을 간단히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성경에서 사용된 바벨론이라는 말은 배교적인 종교를 나타내는데 사용하는 용어이다.
계시록 17장에는 음란한 여인을 바벨론으로 말하였는데 곧 배도한 교회를 의미한다.
반대로 순결한 여인은 정결한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로마교회는 사도 바울이 참으로 사랑하던 교회이다. 그런데 그 교회가 우리들이 지금 말하는 로마천주교,
곧 큰 성 바벨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음녀라고도 말하며 음녀들의 어미라고도 말한다.
어찌하여 사도바울에 의하여 크게 성장하고 사랑받던 교회를 그렇게 말할 수가 있을까?
“성경에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신성하고 영속적인 특성이 결혼의 연합으로 대표되어 있다. …
교회가 그리스도께 대한 신뢰와 애정을 버리고 세속적 사물에 대한 사랑으로 그 마음을 채우므로
그리스도께 성실하지 못한 것은 결혼 서약을 깨뜨리는 것으로 비유되어 있다.” (쟁투, 381).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면 그 아내는 음녀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령한 아내인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까지 사랑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외면하고 세상을 사랑한다면 교회는 음녀가 되는 것이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약 4:4).
교회가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을 따라가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음녀라고 말한다.
“일찍이 유대교는 주님을 떠나 이교도로 더불어 동맹을 맺음으로 음녀가 되었는데, 로마교도 그와 마찬가지로
세속적 권력의 지지를 받기 위하여 스스로 타락함으로 그와 동일한 죄의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쟁투, 382).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세상과 교제하는 정신이 오늘날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 자칭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가!
그리스도교국의 일반 교회들이 겸손, 극기, 단순, 경건 등에 대한 성경상 표준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가있는가! ” (쟁투, 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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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바벨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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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사도바울에 의하여 세워진 로마교회이지만 세상 권세의 총애를 얻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고 스스로 타락의 길로 나아갈 때에 음녀의 어미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 바벨론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이란 순결하였던 교회가 타락하고 배도하였을 때 붙여지는 이름이다.
그러면 1844년 둘째 천사는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치고 있는데 어느 교회를 말하는 것인가?
타락한 로마천주교회를 말하는 것인가?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선포하는 요한계시록 14장의 기별은 전에는 순결하였으나 그 후에 타락한 종교 단체들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 기별은 심판의 경고 다음에 주어지는 기별이므로 그것은 분명히 말세에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로마교에만 적용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로마교는 이미 여러 세기 동안 무너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쟁투, 383).
1844년 이전 순결하였던 교회들은 어떤 교회들을 지칭하고 있는가?
곧 말틴 루터를 위시하여 역사에 나오는 많은 종교 개혁자들에 의하여 세워진 그리스도교회들을 통칭하여 바벨론이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무너졌다고 둘째 천사는 외치고 있다.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에 의하여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들이 어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론이 되었으며
충실한 도성이 음녀가 되고 무너지는 운명이 되었는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연고인가? 선지자의 글을 보도록 하자.
“많은 개신교회들은 로마교가 '땅의 임금들'과 불의의 관계를 맺은 그 본을 따르고 있는데,
국교들은 나라의 정부와 손을 마주잡고, 그 밖의 다른 교파들은 세상의 총애를 받고자 애쓰고 있다.” (쟁투, 383).
“그러면 큰 배교의 발단은 무엇인가? 어떻게 교회가 복음의 순수성에서 떠나가게 되었는가?
그것은 다신교의 습관을 따름으로 이교도로 하여금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기 쉽도록 만든 데 그 원인이 있다. …
새 신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인 신앙의 높은 표준을 낮추어버린 결과로 이교가 홍수처럼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와 그 풍속, 습관, 우상 등이 반입되었다.” (쟁투, 384-385).
“예배자들은 비싸고 유행에 맞는 옷을 입고 모여든다. 사람들을 잘 다루고 이끄는 재간 있는 목사에게는 높은 액수의 봉급이 지불된다.
그의 설교는 보편화된 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유행을 따르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유행을 따르는 죄인들은 교회명부에 등록되고, 유행을 따라 생기는 죄들은 믿는다는 가면 아래 감추어진다.” (쟁투, 386).
하나님의 교회가 바벨론이 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경로를 통해서다. 결코 처음부터 바벨론 교회라는 간판을 붙여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 어느 곳 어떤 교회도 자신의 교회를 바벨론이라고 부르거나 바벨론이라는 간판을 붙인 교회는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사단의 기만이 무서운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 어떤 교회들을 지칭하여 바벨론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은 무너질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될 것을 선고하고 있다.
우리교회는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벨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교회는 선지자와 예언의 신이 있기 때문에 바벨론이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안위하고 있지는 않는가?
교회가 타락한다는 말은 성경의 명확한 기별을 감추어두고 새로운 신자를 얻기 위한 명분 아래 교회의 표준을 낮추게 되면 이것은 곧 타락이다.
이렇게 되면 충성스런 신자들은 줄어들 것이요 세상을 사랑하는 뜨뜻미지근한 신자들은 늘어날 것이요
세상은 이런 영혼들을 따라 교회에 들어와 교회를 참으로 타락시켜 버릴 것이다. 그러면 교회는 바벨론이 된다.
새 신자들을 얻기 위한 명분으로 신앙 표준을 낮추어 버리고 그들의 수준에 맞도록 부드러운 기별만을 강단에서 외칠 때 교회는 분명 타락할 것이다.
분명 이런 교회는 세상을 용납하고 세상이 교회에 용납되면 진리는 외면당하게 되고 진리가 외면당하게 되면 각종 오류와 이설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여러 가지 교리가 난립되어 무엇이 진리인지 신자들이 구별하기가 어렵게 되면 글자 그대로 혼잡하여 교회는 바벨론이 되는 것이다.
1844년 첫째 천사의 기별을 거절하였을 때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세상을 사랑하던 개신교회들이 바벨론이라는 선고를 받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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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천사의 기별을 기억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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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천사의 기별을 거절하였을 때 교회들은 바벨론이라는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천사의 기별을 거절하면 교회가 바벨론이 될 것이며 개인이 거절하면 개인이 그렇게 될 것이다.
1844년 이후 첫째 천사는 둘째와 셋째 천사와 함께 지금도 공중을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들은 항상 첫째 천사의 경험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만약 첫째 천사의 경험을 잊어버린다면 바벨론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천사의 경험들을 잊어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첫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하지 못하면 둘째 천사의 기별을 받을 수 없다.
이론적인 지식과 역사와 예언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그 기별을 받고 그것에 따라 사는 사람들로부터 그 기별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초기, 188).
“첫째 천사의 기별을 거역한 자들은 둘째 천사의 빛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그 다음의 기별의 능력과 영광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초기, 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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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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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당시에 세 부류의 사람들로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으나 사람들의 안목으로는
두 무리의 사람들 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첫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사람들과 거절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첫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무리들 중에 두 무리가 섞여 있었는데 곧 첫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한자들과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 한데 어울려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에는 확연히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이 섞인 무리들을 그냥 두시지 않으시고 신실한 무리들로부터 분리 시키셨다.
초기문집 가운데 있는 말씀을 보면, “그분은 예언적 기간을 계산하는데 생긴 과오를 당신의 손으로 덮어 두셨다.”
(초기, 235)라고 말씀 하셨다.
왜 하나님께서 과오를 덮어 두셨을까? 다시 선지자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낙망을 경험하도록 계획하셨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갔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쁨으로 고대하던 자들은 용기를 잃고 슬픔에 잠겼고, 예수의 오심을 사모하지는 않았으나
두려움 때문에 그 기별을 받아들였던 자들은 그가 기다리던 정한 때에 오시지 않자 모두 기뻐하였다.
그들의 증언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했고 생활을 정결케 하지 못하였다. 정한 때가 지나가자 그러한 사람들은 뚜렷이 구별되어 드러났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바였다. 그들은 먼저 구주의 나타나심을 진정으로 사모한 자들이 슬퍼하고 실망하는 것을 보고 돌아서서 비웃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시험하여 시련의 때에 물러서고 돌아서는 자들을 골라내시는 것이 그분의 지혜임을 보았다.” (초기, 235-236).
첫째 천사의 경험이 없는 무리들이 “예수의 오심을 사모하지는 않았으나 두려움 때문에 그 기별을 받아들였던 자들은 … 생활을 정결케 하지 못하였다.”
이들은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는 마치 신실한 백성처럼 보였으나 첫째 천사의 경험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실망이라는 시련의 도구를 통하여 첫째 천사의 경험이 없는 자들을 골라내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신실한 백성과 그렇지 않는 자들을 구별하시는 지혜이시다.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시여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진실한 무리와 지금은 함께 있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방법에 의하여 진실 된 백성들과 분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
첫째 천사의 경험이 없다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구원의 대열에서 분리되고 말 것이다.
그때에 자신이 하나님께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인가?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권면을 거역하고 있으며 사단과 그의 천사들과 연합하여 하늘이 보낸 기별을 실천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 (초기, 237).
두려운 일은 구원받을 무리에서 떨어져 나갔으나 자신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은 우리들에게도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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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교회의 경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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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7-18).
오늘날 라오디게아 교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사단의 속임수에 의하여 자기기만에 빠져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벌거벗고 가련하고 곤고한 상태에 있지만 본인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말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하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첫째 천사의 경험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의 참된 증인께서는 첫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하라고 권고하시는 것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8-19)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 전했던 두 천사의 기별을 체험하지 못하였다.
사단은 그것을 알고 그의 악한 눈을 그들에게 돌려 저들을 넘어뜨리려 하였다.” (초기, 256).
“나는 교회를 향하여 엄숙한 말을 한다. 현재 교회 녹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20명중 한 사람도
지구 역사를 끝마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대총회회보 1893년. p. 132.
1893년경에 20명중 한사람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면 오늘날은 몇 사람 중 몇 명이나 준비되어 있을 것인지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지 않고 경건의 모양으로 만족하면서 철저한 회개와 자복이 없다면,
그리고 회개 할 것이 없는 회개가 깊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총에서 분리되고 말 것이다.
“교회들이 첫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했을 때 그들은 하늘에서 온 빛을 거절한 채 하나님의 은총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였으며 첫째 기별을 거절함으로 둘째 천사의 기별 가운데 있는 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초기, 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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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천사의 경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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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3월 22일 정한 때가 지나가자 첫째 천사의 기별을 진실로 받아들인 무리들은 오히려 큰 실망을 당하였고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였다. 그들은 실망 중에서도 다시금 말씀을 연구하였고 다니엘서에 나타난 2,300주야의 예언을 다시금 검토한 결과 2,300주야의 계산에는 조금도 잘못이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2,300주야의 기산점이 되는 예루살렘의 중건령이 봄철이 아닌 가을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예루살렘성의 중건령을 내린 아닥사스다왕의 조서가 봄이 아닌 가을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고 그 해 유대민족의 대속죄일이 10월 22일 가을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들의 과오가 거기에 있었음을 깨달은 신실한 무리들은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되었고 1844년 10월 22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제 그리스도의 오심이 봄이 아니라 가을로 변경된 것이다.
그들은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몇 개월을 성경과 기도의 씨름을 하였으며 드디어 자신들의 과오를 알게 되었고
실망은 더 큰 확신으로 변화되어 기쁨이 충만함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이 불과 3개월 앞으로 다가와 있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첫째 천사의 기별을 전할 때와는 다른 엄숙한 두려움과 의무감으로 압도되었다.
그들의 심령은 환희와 열광적인 기쁨에 도취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들처럼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그저 기뻐하고 찬미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었고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 얻기 때문에
믿기만 하라 믿기만 하라 구원은 믿는 자들의 것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외치는 그런 복음이 아니었다.
당시의 신실한 백성들의 경험을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거기에는 열광적인 기쁨은 별로 없고, 오히려 마음을 깊이 살피고, 죄를 고백하고, 세상을 버리는 일들이 있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는 그들의 번민하는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부담이었다.
그들은 끈기 있는 기도와 확고한 헌신을 주께 드렸다.” (쟁투, 400-401).
“열광적인 환희는 없었다. 그런 일은 미래에 속한 것으로 하늘과 땅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충만하여질 그 때를 위하여 남겨 두었다.
또한 즐거운 환호성(歡呼聲)도 없었다. 그것 역시 하늘에서 환호성을 올릴 때를 위하여 남겨 두었기 때문이었다.
노래하는 사람들도 잠잠하였다. 그들은 하늘의 찬양대, 곧 천사들의 무리와 연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의견의 충돌이 없었고, 모두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뭉쳐있었다.” (쟁투, 401).
오늘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어떤 사람들처럼 가벼운 대화와 경솔한 행동, 경박한 웃음과 세상을 사랑하는 옷차림,
마음을 찢는 회개와 자복이 없는 거듭남, 죄에 대한 혐오가 없이 기쁨과 평안만을 추구하는 복음,
경건한 두려움과 전심을 바치는 헌신과 굴복이 없는 생애와는 전혀 다른 경험들이었다.
선지자께서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그 운동은 각 곳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 마음을 깊이 살피는 일과 심령을 겸비하게 하는 일을 일으켰다.
그 운동은 세속적 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게 하였고, 다툼과 원한을 화해하고, 모든 잘못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용서와 가납하심을 얻기 위하여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탄원하게 하였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겸비와 완전한 순종을 하게 하였다.” (쟁투, 401).
사랑하는 재림 성도들이여 아직도 세상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고 형제들 간에 다툼과 원망이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자비와 용서를 얻기 위해
완전한 회개와 자복이 없다면, 그리고 주님께 굴복하여 겸비한 마음으로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의 각오가 없다면,
우리들은 아직 둘째 천사의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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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날 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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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10월 22일을 기다리는 진실된 백성들의 생애는 세상의 사물을 완전히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경험하였다.
젊은이들은 둘씩 둘씩 손을 잡고 숲 속이나 한적한 곳을 찾았고, 잠시 후 그들이 눈물 젖은 눈으로 새 친구가 되어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는 나쁜 감정을 그리스도의 재림의 아침까지 갖고 가기를 원치 않았던 것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랑하는 자녀들이 무서운 전염병으로 죽는 일도, 젊은이들이 폐결핵으로 쓰러지는 안타까운 일도, 이별도, 슬픔도,
고통도, 이제 3개월 후가 되면 모두가 끝이 날 것이었다. 무서운 혹한 추위의 겨울이 오기 전에 그들은 이 세상을 떠날 것이었다.
1844년 10월 14일 재림기별을 전하던 찰스 핏취(초기문집 18; 화잇 부인의 계시 속에 만난 인물임)는
과로로 인하여 숨졌으나 유족들은 슬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주일후면 다시 만날 것이 확실하였기 때문이었다.
상인들은 조용히 상점의 문을 닫았고 3개월 후면 만나 뵈올 만왕의 왕을 뵈옵기 위하여 사업을 그만둔다는
안내문을 써 붙였다. 기술자들은 주인과 상사들을 찾아가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빚진 자들은 빚을 갚기 위해 재산들을 정리하였고 채권자들과 부자들은 형제들의 빚들을 탕감해주었으며
빚을 갚을 수 없어 어쩔 줄 몰라 하는 형제들의 빚을 대신 갚아 주었다.
농부들은 감자를 추수하는 일을 포기하였고 오히려 토지를 팔아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인쇄물을 제작하고 주의 오심을 광고하는 자금으로 헌신하였다.
급기야는 더 이상 돈이 필요 없으니 가지고 오지 말라는 광고가 나왔으며 뒤늦게 돈을 가지고 왔던
어떤 형제들은 하늘 창고에 보물을 저축할 수 없어 안타까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1844년 10월 22일, 주님의 오심을 알리는 전도지들은 낙엽과 같이 길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고 인쇄기들은 밤낮을 쉬지 않고 돌아갔다.
재림을 알리는 신문에는 ‘나에게 피해를 입은 자는 저를 찾아 달라’는 기사들이 실렸고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자신을 정결케 하는 일을 하였다.
드디어 1844년 10월 19일 주님이 오시는 날 3일전이 되었을 때 숨쉴 여유도 없이 밤낮으로 돌아가던 인쇄기계는 멈추어졌고 수많은 청중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세워졌던 천막도 거두어졌으며 기별자와 청중들은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 정돈 한 후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헤어졌다.
3일 후에 하늘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모두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기별은 전하여 졌고 모든 준비는 끝이 난 것이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는 선고가 이제는 내린 것이었다.
이것은 1844년 10월 22일 재림을 기다리던 성도들의 경험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재림성도들의 경험들은 어떤가? 오늘날 재림성도들은 참으로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도 둘째 천사의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다.
과거의 재림성도들보다 못한 경험을 가지고도 하늘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하는 믿음은 기만이다.
혹시 형제들 사이에 나쁜 감정들이 아직도 우리들의 마음에 남아 있지는 않는지?
세상에 대한 애정과 야심을 버리지 못하여 하나님의 명확한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일을 미루고 있지는 않는지?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재물을 사랑하여 부당한 방법으로 양심을 잠재우는 일은 없는지?
그렇다면 아직도 우리들은 둘째 천사의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재물은 하나님의 제단에 바쳐져 있어야 하며
언제 어느 때이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주저 없이 바칠 수 있는 믿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안식일에도 어린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는 한번의 저항도 해보지 않은 채 굴복해 버리는 젊은이들,
이와 같은 사실을 보고도 한마디의 경고도 하지 못하는 교회의 지도자들, 이 모든 현실은 둘째 천사의 경험과는 다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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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자신을 포기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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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을 잃는다 하더라도 구원의 가치와 세상의 모든 이익보다 더욱 고귀한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이 세상의 모든 것, 지위, 가옥, 명예 등 모든 것을 가져와야 한다. 완전히 헌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보류함이나 부분적 희생이나 우상은 승인하지 않으신다. 모두는 자신과 세상에 대해 죽어야만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날마다 하나님께 헌신을 새롭게 하자. 영생은 평생 동안 인내와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할 만큼 가치가 있다.” (우리의 높은 부르심, 308).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 말씀은 비록 희미하게 밖에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가장 치욕적인 수욕,
곧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까지 그들이 복종해야 할 것을 지적하신 것이었다.
이 말씀보다 더 완전한 자아 포기를 묘사한 말씀은 있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 그리고 품성으로 세상에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나타난
자기희생, 동정, 사랑이 하나님의 일꾼의 생애에서 재현(再現)되어야 한다.” (소망, 416, 417).
“천사는 말했다: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라. 자아는 죽어야 한다.
육신적 욕망과 거듭나지 못한 마음의 성향은 굴복되어야 한다.’” (1증언, 508).
“이와 같이 자아를 포기하는 일은 그리스도인 생애를 처음 시작할 때에만 할 것이 아니라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매 발걸음마다 거듭되어야 한다.” (실물, 159).
“많은 사람들은 저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으며 또 자기 자신과 죄에 대하여 종이 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같은 상태를 개선하고자 애를 쓰고 있으나 저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는 않는다.
그들은 저희 자신을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고 그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거룩한 능력을 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형성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막연하게 저희의 결함을 시인하나 그 죄를 낱낱이 구별하여 버리지는 않는다.
악을 행할 때마다 우리의 이기심은 점점 강하게 된다.” (실물, 48).
둘째 천사는 지금도 공중을 날아가고 있다. 재림성도들이여!
만약 우리들의 생애에 둘째 천사의 경험이 없다면 바벨론의 운명이 우리들의 운명이 되고 말 것이다.
둘째 천사의 기별은 모든 악을 버리고 자신을 포기하라는 것이며 모든 부정한 곳에서 분리하라는 기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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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소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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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문집 245페이지의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자.
“첫째, 둘째 천사의 기별에 나타난 예언은 성취되었다.
그것들은 아주 적절한 때에 주어졌으며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계획하신 그 일을 성취시켰다.” (초기, 245)
이 말씀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통하여 이루실 사업과 계획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의 계획하신 사업은 무엇인가? 우리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주어진 말씀으로 인하여
나타내 보여주신 그분의 계획과 사업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이 될 것이다. 다시 초기문집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다.
“그 때에 나는 조롱당하던 자들을 향하여 ‘그들에게서 나와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외치는 한 음성을 들었다.” (초기, 242)
“그늘이 하늘을 우러러 보며 위를 가리킬 때 ‘그들 가운데서 나와 따로 있으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자유롭게 풀려
나오기 위하여 투쟁하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마침내 그들은 그들을 두르고 있던 줄을 끊어 버렸다.” (초기, 242)
둘째 천사의 기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진실 된 백성들을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과 분리시키시려는 계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낙망을 경험하도록 계획하셨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갔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쁨으로 고대하던 자들은 용기를 잃고 슬픔에 잠겼고, 예수의 오심을 사모하지는 않았으나
두려움 때문에 그 기별을 받아들였던 자들은 그가 기다리던 정한 때에 오시지 않자 모두 기뻐하였다.
그들의 증언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했고 생활을 정결케 하지 못하였다.
정한 때가 지나가자 그러한 사람들은 뚜렷이 구별되어 드러났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바 이였다.
그들은 먼저 구주의 나타나심을 진정으로 사모한 자들이 슬퍼하고 실망하는 것을 보고 돌아서서 비웃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시험하여 시련의 때에 물러서고 돌아서는 자들을 골라내시는 것이 그분의 지혜임을 보았다.” (초기, 235-236)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세상을 사랑하는 육적인 신자들은 신실한 백성들과 분리되었다.
한 백성으로 있었던 그들에게 왜 분리가 일어나도록 주님께서 경영하셨을까?
세상 끝 날까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던 분께서 왜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시켰을까?
교회 안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이유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권이다.
“그리스도인임을 큰소리로 선포했으나 거의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실패하였다.
사단은 예수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형편을 보고 자신만만해졌다. 그는 그들을 올무로 씌웠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정로에서 이탈시켰으므로 그들은 어떤 다른 길로 하늘에 가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천사들은 시온의 순결하고 거룩한 자들이 죄인들과 세상을 사랑하는 위선자들과 섞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예수의 참된 제자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불의한 자들이 거룩한 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초기, 246-247)
“나는 예수께서 그의 오심을 거절하고 경멸하는 자들에게서 그분의 얼굴을 돌리시고 천사들에게 그분의 백성들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부정한 자들에게서 이끌어내라고 명하는 것을 보았다. 이 기별에 순종한 자들은 자유롭게 풀려 나와 연합하였다. 거룩한 빛이 그들 위에 임하였다.
그들은 세상을 버리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희생할 뿐 아니라 모든 세상 재물을 포기하고 시선을 하늘로 향해서 저들의 사랑하는 구원자를 보고자 열망했다.
거룩한 빛이 그들 주위를 비추었으며 내적인 평안과 기쁨이 엿보였다. 예수께서는 그의 천사들에게 가서 저들을 격려하라고 명하셨는데
이는 저들에게 시련의 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초기, 249-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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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의 필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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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천사의 기별의 경험이 없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둘째 천사의 기별을 통하여 분리시키시고자 계획하셨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늘에서는 힘 있는 천사들이 보냄을 받았으며 이 땅에서 기별을 전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큰 능력이 주어졌다.
이것은 밤중소리로서,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려 나오라” 는 외침이었다.
이 밤중소리로 인하여 1844년 여름에 5만 명의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왔으며, 뒤이어 수많은 자들이 사랑하던 교회를 떠나는 일이 일어났다.
이와 같이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시키신 하나님의 목적을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날에 설 수 있는 백성들을 준비시키기 위하여서는 하나의 큰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었다.
당신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의 대부분이 영원한 것을 위하여 준비하지 않고 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써 그들을 혼수상태에서
깨워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를 갖추게 하시고자 경고의 기별을 보내실 예정이었다. 그 경고의 기별은 요한계시록 14장에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 하늘의 천사들에 의하여 전파되는 삼중(三重)기별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즉시 인자가 와서 땅의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쟁투, 311)
마지막 하나님의 날에 설 수 있는 한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하나의 큰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날을 위하여 한 백성이 준비되지 못한다면 그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큰 개혁을 통하여 정결한 한 백성이 준비되어야 하였고 그 일은 현재와 같은 교회의 상황 속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상태를 주님께서는 보신 것이다.
더럽고 습기 찬 창고에는 곡식이 변질되고 썩어버리는 것과 같이 타락한 교회 안에 신실한 백성들을 그냥 둔다면,
불의한 자들에 의하여 순결한 자들조차 더럽혀지기 때문이다.
교회는 진실한 백성들이 모이는 곳이 되어야 하였으나, 오히려 신실한 백성들이 출교를 당하는 일이 교회에서 일어났을 때
둘째 천사는 교회를 향하여 바벨론이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리던 곳이 바벨론이 될 수 있는가?
교회가 영원한 복음인 첫째 천사의 기별을 거절하였을 때에 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였고, 그 결과로 교회는
타락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운명의 바벨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리는 필연적인 사실이 된다.
1844년 당시 신실한 백성들은 교회의 상태를 보고 당황하여 하늘을 향해 쳐다보았을 때, “그들에게서 나와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들 가운데서 나와 따로 있으라”고 하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844년 여름에 5만 명의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왔으며 뒤이어 수많은 신실한 백성들이
사랑하던 교회를 떠나는 일이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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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을 지킬 수 있는 위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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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한 시대를 대표하던 교회들은 버림을 받았고 새로운 한 백성이 탄생된 것다.
그러나 새롭게 선택받은 이 백성들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아직도 많은 시련을 통과하여 더 정결하고 순결하게 단련을 받아야 하였다.
인간의 과오와 전통을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는 완전한 믿음이 이 백성들에게 요구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다시금 혹독한 시련을 통과해야만 하였다.
첫째 천사의 기별과 둘째 천사의 기별로 말미암아 실망을 당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들은 과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상에 사는 백성들에게 경고와 기별을 되풀이해서 보내사 그들이 마음을 깊이 살피고 성경을 연구하여 이교 시대와 법왕 시대를 거쳐
전통적으로 내려온 과오에서 벗어나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선하심 때문임을 보았다.” (초기, 250)
1844년 당시 재림성도들은 첫째 천사의 기별로 철저한 회개를 이루어 거듭남의 경험을 하였고
둘째 천사의 기별로 철저하게 죄인과 죄로부터 분리됨으로 거룩함의 성화의 생애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경륜 가운데는 철저한 실망을 경험해야만 하였다.
“당신의 백성들에게 미래를 감추시고 그들을 결정의 지점에 서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정한 시기가 전파됨이 없이는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 (초기, 246)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하늘의 지혜를 주셔서 잘못된 과오를 깨닫게 하실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시험해 보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분은 예언적 기간을 계산하는 데 생긴 과오를 당신의 손으로 덮어 두셨다”고
초기문집 235페이지에 기록하고 있다. 왜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와 같은 시련을 계획하셨을까?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1844년 재림을 전하든 기별 자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깨닫고 있는 것처럼 1844년 성소의 정결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니라
예수님이 성소를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시는 예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과연 그처럼 철저한 회개의 경험과
죄와 죄인에게서 분리되는 경험이 전 세계적으로 한 백성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소의 정결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믿었기에 그와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문집 246페이지에 이런 말씀이 주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정한 시기가 전파됨이 없이는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 (초기, 246)
이리하여 하늘 성소의 정결 사업이 시작됨과 동시에 이 땅에는 마음의 성소가 정결하게 된 한두 명의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한 백성이 탄생된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긴 예언인 2,300주야의 예언이 성취되었고,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단 8:14)는 예언의 성취를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기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큰 능력으로 역사 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시고
또 그들이 당신의 모든 계명들을 지킬 수 있는 위치로 끌어올리셨던 것이다.” (초기, 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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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소의 문을 여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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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약속하신 모든 것을 반드시 성취시키셨다.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하늘에 있는 성소의 문을 닫으시고 성소를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지성소의 문을 여시고 그리로 들어가셨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자들은 그 신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실수했으나 하나님 편에서의 실수는 없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모두 성취되었으나 인간은 이 지구가 예언된 기간이 끝날 때 정결케 될 성소라고 오해했던 것이다.
무너진 것은 인간의 기대였지 하나님의 약속은 아니었다.” (초기, 250-251)
주님께서는 이 땅에 재림하시기 전에 아직도 하늘에서 마쳐야할 사업이 있었다.
그분은 백성의 대제사장으로서 하늘에서 백성들의 죄를 도말하고 성소를 정결케 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므로 1844년 10월 22일 그분은 이 땅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성소를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이다.
마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신 빈 무덤을 보고 실망하여 있을 때, 무덤을 지키던 천사들이 주님은 부활하여 너희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셨다고 하신 것처럼 1844년 10월 22일 예수님은 백성들보다 먼저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이다.
왜 예수님께서는 성소의 문은 닫으시고 지성소의 문은 여신 후 그곳에 들어가셨을까?
초기문집 253페이지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제시하여 주고 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그는 이 말을 반복하면서 하늘 성소를 가리켰다. 이 기별을 깨닫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지성소로 향하게 되었다.” (초기, 254)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세우신 지상 성소를 통하여 지성소가 어떤 곳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었고 그 안에는 하나님이 친히 쓰신 두 돌비가 있었으며 그 위에는 속죄소가 있었고
또 두 그룹천사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숭경하는 자세로 들여다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있어 등불이 없었으나 죄인들은 감당할 수 없는 광채가 그곳에 임재하고 있었다.
지성소에는 결코 죄가 용납되지 않는 곳이다. 만약 죄 있는 사람이 그곳에 들어간다면 지성소의 영광은
죄인을 소멸시켜 버리는 곳이다. 바로 그곳에 우리주님이 1844년 10월 22일 들어가신 것이다.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들도 주님을 따라 믿음으로 그곳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재림성도 들이시여! 지성소는 죄가 용납되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시는지?
과연 지성소의 영광 앞에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는 자가 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죽지 않고 살아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주님을 따라 믿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제 지성소에서 주님을 만나야만 한다. 주님께서는 지성소에 계신다.
그러나 그곳에는 죄인들은 소멸시키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곳이다.
첫째 천사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한자들은 믿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로 정결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셋째 천사가 위를 가리키면서 실망한 자들에게 하늘 지성소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믿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 예수님을 만났다.” (초기, 254-255)
“셋째 천사는 저들을 지성소로 향하게 하였으며 과거의 기별들에 경험을 가진 자들은 그들에게 하늘 성소의 길을 가리켜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 천사의 기별 가운데 있는 완전한 진리의 연결을 보고 그 순서대로 즐거이 받아들여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하늘 성소로 들어갔다.” (초기, 256)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의 영광 앞에 살아남는 백성을 만드시기 위하여 첫째 천사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이 땅에 보내셔서 정결하게 된 한 백성을 만드시고자 계획하신 것이다.
첫째 천사의 기별로 철저한 회개를 하게 하셨고, 둘째 천사의 기별로 죄와 죄인에게서 분리시켜 지성소에 합당한 백성이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것이다.
이제는 당신의 백성들을 큰 능력으로 역사하여 당신의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위치 곧 지성소의 한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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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후에 예수님을 만나는 기별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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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여러분은 지성소의 합당한 표준을 가지고 있는가? 이다.
둘째 천사는 지금도 공중을 날아가고 있다.
첫째천사의 기별은 예수님이 십년 후에 오신다는 기별이었다면 둘째천사의 기별은 3개월 후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기별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이 1844년 3월22일에서 10월22일로 연장되어 7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었으나 예언들을 다시검토하고 말씀을 연구하느라
4개월을 소비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3개월 밖에 없었다.
3개월밖에 남아있지 않는 세상, 3개월 후에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상황의 당시 재림신자들의 체험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믿음과 신앙자세가 되어야 한다.
재림신자들이라면 마치 3개월 후면 예수님이 오시는 것처럼 준비된 생애를 살아야 한다.
이것이 참으로 둘째천사의 기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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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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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9-12.
셋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기별 중에 가장 엄숙하고 중요한 기별을 전하고 있다. 이토록 무섭고 두려운 기별을 성경 중에 없다.
짐승을 경배하고 그의 표를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요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며 밤낮 쉼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운 경고의 말씀으로 셋째천사는 공중을 날면서 외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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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천사는 지성소로 보여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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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성소의 봉사를 끝내시고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율법이 들어있는
법궤 앞에 서 계실 때 세 번째 기별을 가진 힘센 천사를 세상에 보내셨다. …
이 기별을 깨닫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지성소로 향하게 되었다. ”(초기, 254)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대실망을 하게하였다.
물론 그 실망 가운데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있었으나 실망한 백성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실망 중에서라도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연구하면서 자신들의 과오가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 열렬한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옛날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낭패와 실망을 당하였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제자들은 일요일 새벽미명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
그러나 분명히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큰 실망을 당한
제자들은 이제는 예수님의 시체조차 잃어버렸으니 실망 중에 실망이요 큰 낭패를 당한 것이었다.
빈 무덤을 보고 그들은 절망적인 슬픔에 빠졌다.
그와 같이 첫째와 둘째 천사의 실망은 제자들의 경험과 흡사하였다.
분명히 영광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셔야할 주님은 오시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예수께서 어디 계신 것조차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분명히 자신들이 말씀을 연구한 결과로는 하늘을 떠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을 떠나신 주님은
이 땅에 나타나지 않으셨으므로 그들은 이제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도 알지 못하는 절망을 당하였다.
예수님의 시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알지 못하였던 제자들처럼 1844년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주의 종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다리던 시간에 예수님을 뵙지 못하게 되어 크게 실망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예언된 기간이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구주께서 오시지 않는 이유를 몰랐다.
천사가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지 못했는가?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셨는가?
아니다. 그분은 약속하신 모든 것을 반드시 성취시키셨다.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하늘에 있는 성소의 문을 닫으시고 성소를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지성소의 문을 여시고 그리로 들어가셨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자들은 그 신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초기, 250)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는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약속을 다 지키셨으며 하나님의 섭리는 계획하신 그대로 성취되었다.
다만 백성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여 실망에 빠졌을 뿐 하나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성취되었다.
불법의 비밀이 성취되어 하나님의 성소가 짓밟히고 하나님의 율법이 변경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2300주야가 마치는 때에는
다시금 성소를 정결하게 하시겠다는 예언을 성취시킨 것이었다.
2300주야의 긴 예언이 끝나고 드디어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가 정결케 되는 사업은 당신의 백성들을 정결케 하심으로 성취를 보았다.
이와 같은 구속의 경륜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랑하는 백성들을 잠시 실망하도록 하신 것을
무지한 인생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이 모두는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였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잠시 실망하게 하셨으나 하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자비의 천사 힘센 능력의 천사,
셋째천사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그들에게 가리어졌던 신비들을 알게 하셨다.
이제 이들은 과거의 모든 경험들을 회고해 볼 때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자신들을 죄로부터 분리시켜 정결케 하시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섭리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셋째 천사가 위를 가리키면서 실망한 자들에게 하늘 지성소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믿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 예수님을 만났다. 희망과 기쁨이 그들 가운데 새로이 솟아 올랐다.
나는 그들이 예수의 재림을 선포한 때로부터1844년이 지나기까지 그들의 모든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며
회고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이 실망한 이유를 깨닫자 다시 기쁨과 확신이 생겼다.
셋째 천사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밝히 보여 주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이하신 섭리로 인도하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초기, 254)
셋째천사는 지성소를 가리키고 있다고 주의 종은 말한다. 그리스도가 어디에 계신지를 몰라서 실망했던 이들에게
셋째천사는 그리스도가 지성소에 계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지성소는 어떤 곳인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거룩한 율법이 들어있는 법궤가 있고
그 위에 죄를 속죄하는 속죄소가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항상 충만히 임재 하여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곳에는 죄가 용납되지 않았고 죄인이 그곳에 들어왔다가는 하나님의 영광이 소멸하는 불이 되는 곳이다.
나답과 아비후도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였다. 대속죄일날 대제사장은 휘장을 넘어
지성소에 들어간다. 그러나 만약 대제사장이 정결치 못하다면 그는 들어가는 즉시 죽임을 당하였다
(레 16:11-13 참조).
그러므로 지성소는 실로 두려운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년 일차씩 대제사장은 그곳에 들어가야 하는데 왜냐하면 성소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서였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대제사장과 함께 지성소에 직접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대제사장과 같은 경험이 그날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봉사하고 있는 동안 백성들은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하였다.
이것이 성소를 정결케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목적이요 계획인 것이다.
“이 기별을 깨닫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지성소로 향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는 예수께서 법궤 앞에 서서 아직도 자비를 베풀 모든 사람과 무지하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마지막 중보를 하고 계시”(초기, 254)다.
셋째천사는 우리들에게 하늘 성소 중 지성소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지성소에서 예수님을 만나도록 해 주었다.
고대 이스라엘이 표상적인 대속죄일날 지성소에 들어가는 일이 그처럼 두려운 일이었다면
실제적인 대속죄일인 오늘날 우리는 지성소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고 그곳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불가불 지성소에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소(첫째 칸)가 아닌 지성소에 계시기 때문이다. 만약 정결치 못하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소멸하는 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셋째 천사는 지성소로 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곧 첫째천사의 회개의 경험과
둘째천사의 경험인 죄와 죄인들과의 분리되는 경험은 지성소롤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들의 길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의 소유자들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일이 두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지성소에는 자비로우신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며 그곳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믿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소멸하는 불이 아니요 오히려 이들에게는
태초에 아담에게 입혀 주셨던 영광의 옷으로 입혀질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죄 있는 육신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견딜 수 있는 이 놀라운 사실을 천사들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의 성도들은 이런 특권이 주어졌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와 함께 지성소에 거해야 한다.
마치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하여 지성소에 들어간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봉사하는 동안 백성들은 비록 몸은 성막밖에 있었으나
그들은 지성소 안에 봉사하고 있는 대제사장과 같은 믿음과 순결한 생애가 요구되었던 것처럼 1844년 이후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지성소에서
봉사하시는 동안 우리들은 비록 몸은 이 땅에 거하여 있으나 하늘지성소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예수님과 같은 믿음과 순결한 생애가 오늘날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성소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말이다.
셋째천사의 결론은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우리들이 가져야 할 믿음은 곧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가지셨던 믿음이 요구된다.
생각으로도 범죄 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들을 성도라고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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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믿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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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믿음은 십자가에 나타나 있다. 그분의 모든 생애에는 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그는 생각으로도 죄를 범하지 않으셨다.
이와 같은 믿음이 예수님이 가지셨던 믿음이다. 그는 십자가의 고통을 예견하고 ‘나의 아버지여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 26:39)라고 부르짖으셨으나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세상의 죄인들과 타협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죄와 타협하기 보다는 기꺼이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다.
상상적인 시련과 작은 시험을 이기진 못하여 세상과 타협하는 자들이여 십자가 밑에서 예수의 믿음을 배우자.
거룩하신 그분의 얼굴에 죄인들이 침을 뱉었다.
더러운 입술로 하나님의 아들을 향하여 조롱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고 하였을 때
천사들은 분개하였다. 그러나 그 분의 입술에는 '저들이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고통 중에서 기도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지셨던 믿음이었다.
하늘에는 생명수의 강이 있었으나, 그는 이 땅에서 물 한 잔을 먹지 못해 갈하셨다.
십자가상에서 그분은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쓸개를 탄 포도주가 주어졌다.
인간들이 그분에게 베푼 최대의 동정이었으나 그분은 그것을 잡수실 수 없었다.
쓸개 탄 포도주는 정신을 흐리게 하며 고통을 제해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음료를
마실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정신이 흐려질 때, 사단의 공격을 받는다면 안전하지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구실로 부절제하는 자들이여, 십자가 밑에서 예수의 믿음을 배우자.
건강을 핑계하며 고기를 탐하는 자들이여,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라. 피를 물같이 쏟으시므로 기진하시면서도
부정한 음료를 거절하신 예수님의 믿음을 배워야 한다. 셋째천사의 기별은 예수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그는 이 말을 반복하면서 하늘 성소를 가리켰다.
이 기별을 깨닫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지성소로 향하게 되었다. ”(초기, 254)
셋째 천사의 기별자들이여!
우리는 짐승과 그 우상과 싸우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십자가의 군병들임을 잊지 말자.
머지않아 우리는 짐승과 그 우상과 접전하게 될 것 이다. 그러므로 영생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굳게 해야 한다.
생명의 위협을 받을 것이나 진리를 끝까지 고수해야 할 것이다.
승리할 수 있는 유일의 방법은 예수님의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이 믿음만이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셋째 천사는 이 예수의 믿음을 가지라고 반복하여 말한 것이다.
우리들은 하늘 성소 중 지성소를 바라보아야 하며 지성소의 합당한 생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음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자.
“죄로 영혼을 더럽히기보다는 차라리 궁핍과 비난과 친구들과의 분리와 어떤 종류의 고난이라도 택하라.
불명예나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하겠다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표어가 되어야 한다. ”(5증언, 147)
“그는 죄를 짓기로 동의하지 않으셨다. 그는 생각으로라도 시험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과 연합되었다. 그는 성령의 내재하심으로 투쟁할 태세가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소망, 123)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명령이나 권고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약속 곧 매우 적극적인 약속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과 같이 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으셨으며, 또 사악한 의지를 개입시키지 않고
당신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는 모든 자들을 위하여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보훈, 76)
“예수께서는 너희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일 것 같으면, 그분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 그분과 같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자녀는 그 아버지의 생애를 본받아 산다.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그분의 자녀일 것 같으면, 하나님의 생애를 따라 살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골 2:9)시기 때문에, 그분의 생애가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고후 4:11)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생애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고 이루어지던 동일한 품성과 동일한 업적을 드러낼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그분의 율법의 모든 조목과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보훈, 77)
“그대는 오늘의 의무와 시련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내일을 위한 은혜는 아직 필요치 않다.
그대는 오직 오늘과만 상관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오늘을 위하여 승리하라. 오늘을 위하여 자아를 부정하라.
오늘을 위하여 깨어 기도하라. 오늘을 위하여 하나님 안에서의 승리를 거두라.”(1보감, 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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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돌비(십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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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은 무리들이 예수를 따라 지성소에 들어가 법궤와 속죄소를 보고 그 영광에 매료되는 것을 보았다.
그 때 예수께서 법궤의 뚜껑을 여셨고, 그러자 아! 거기에는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비가 있었다!
그들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계명을 내려다 보았다.”(초기, 255)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지팡이와 언약의 비석이 있고"(히 9:3, 4).
위에 있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자. 이 말씀들은 우리들에게 무엇 인가 깊고 넓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
화잇 선지자는 계시 가운데서 셋째 천사가 지성소로 보여주며 그 손으로 지성소를 가리키는 것을 보았고
남은 무리들이 예수를 따라 지성소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았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법궤'와 '속죄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십계명'을 보았다.
바울도 역시 계시 가운데서 하늘 지성소를 보았다.
그곳에서 언약궤와 만나를 담은 항아리, 아론의 싹 난지팡이, 그리고 비석(십계명)을 보았다.
왜 이와 같은 거룩한 장소와 기구들을 계시 가운데서 보여 주셨을까? '지성소'는 거룩한 곳 중에 거룩한 곳이다.
죄가 용납되지 않는 곳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곳이다. 왜 이와 같이 거룩한 장소를 열어서 보여 주셨을까?
그것은 셋째천사의 기별자들은 이와 같이 거룩한 품성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 곧 품성을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품성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품성은 법궤 속에 들어있는 십계명이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법궤의 뚜껑을 열어서 보여 주셨을 때, 그 안에 들어있는 십계명은 살아서 움직이듯
빛나고 있었고 넷째 계명은 유난히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계시 중의 장면들은 곧 셋째천사의 기별자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여야 할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며
참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지에 대한 시험은 곧 넷째계명인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로 나타나게 될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십계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특히 넷째 계명에 대한 안식일을 준수함에 있어서 더욱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켜야하며 우리의 마음은
그날에 대한 숭경심으로 가득 채워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 자신처럼 거룩하고 신성하다.
사단은 바로 이 거룩한 율법 중 넷째계명을 통하여 우리들을 시험할 것이다.
“예수께서 지성소의 문을 여실 때 나는 안식일에 대한 빛을 보았다.
그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시험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시험을 받았다.”(초기, 254)
비록생명과 생계가 위협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율법을 고수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경험을 셋째천사의 기별자들은 가져야 할 경험이 될 것이다. 안식일 준수에 대한 표준을 고수하자.
“하나님께서는 짓밟힌 안식일의 깃발을 높이 들라고 우리를 부르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바른 모본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6증언, 352)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는 세계적으로 군대(전쟁)문제로 시험을 받고 있다.
군대에서의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일이 가능한가? 특히 넷째계명을 말씀에 따라 양심적으로
준수할 수 있겠는가? 부분적인 안식일 준수를 하나님께서 가납하실가? 증언의 말씀을 읽어보자.
“유한한 인간이 자신의 보잘것없는 일시적 이익을 위하여 감히 전능하신 분과 타협하는 것은 가장 참람된 일이다.
때때로 안식일을 세속적 사업에 사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것을 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모한 범법이다.
그것은 주님의 계명을 편의상의 문제로 삼기 때문이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이 시내산에서 우레와 같이 울려 나온다.
부분적 순종, 분리된 관심은, 그분을 미워하는 자들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시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에게 가납될 수 없다.”(4증언, 249)
"사단은 … 전쟁의 수단들 동원해 진리의 옹호자들을 대항하게 선동 할 것이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8년 5월 8일.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어 있는 그분의 백성들이 이 난처한 전쟁에 가담할 수 없음을 보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모든 신앙상 원칙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그들은 진리에 순종하면서
동시에 상관들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다. 거기에는 계속적으로 양심을 어기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의 원칙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다. ”(1증언, 361)
“만일 부모들이 자녀들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교육받도록 허용하고 안식일을 평범한 날로 만들 것 같으면,
하나님의 인이 그들에게 쳐질 수 없다. 그들은 세상과 함께 멸망당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피에 대한 책임이 부모들에게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교권, 269)
안식일을 위한 예비일의 준비는 곧 안식일을 올바르게 준수하는 일에 결정적인 것이 될 것이다.
안식일에 요리하는 일을 말씀에 비추어볼 때 타당한 일인가?
안식일을 준수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어떤 경우에는 문자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여섯째 날에 안식일을 위해 준비하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들과 안식일 에 요리하는 자들은
넷째 계명을 범하는 자들이며 이들은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자들이다." 영적선물 3권 253.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출 16:23).
“금요일에 안식일 준비가 완료되게 하라. 모든 의복이 준비되고, 모든 요리가 마쳐졌는가 확인하라.
신발은 닦아 놓고, 목욕을 하라. 이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것을 규칙으로 삼으면 할 수 있다.
안식일에 옷을 수선하거나, 음식을 요리하거나, 쾌락을 구하거나, 기타 세상적인 일을 하지 말 것이다.
해가 지기 전에 모든 세상 일을 제쳐놓고, 세속적인 모든 신문, 잡지들을 눈에 보이지 않게 치우라.
부모들이여 자녀들에게 이렇게 하는 준비와 그 목적을 설명하고, 그들이 계명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는 준비를 하는 데 참여하게 하라.”(6증언, 355)
“안식일을 지킨다고 말하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행하는 것보다 안식일은 훨씬 더 신성하다.
주님께서는 문자로나 정신으로나 간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 의하여 지나치게 욕을 당하셨다.”(6증언, 353)
“많은 공언하는 안식일 준수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안식일은 훨씬 더 신성하다.
안식일을 의문이나 정신면에 있어서 계명에 따라 지키지 않는 자들로 말미암아 주께서는 크게 수치를 받아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준수의 개혁을 요구하신다.”(교권, 263)
“안식일을 주 앞에서 거룩히 지키는 것은 영원한 구원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삼상 2:30)리라.” (6증언, 356)
이처럼 넷째 계명을 문자적으로 순종해야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요
머지않아 우리들이 직면할 선악의 대쟁투에서 이 넷째 계명이 계쟁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은혜가 풍성할 때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안식일을 준수하는 훈련이요구되는 것이다.
"네가 보행자와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는 어찌하겠느냐" (렘 12:5)
다음의 말씀을 읽어보자.
“안식일은 충성의 큰 시금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특별히 투쟁의 초점이 되는 진리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마지막 시련이 닥쳐올 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섬기지 아니하는 자들을 구별하는 선이 그어질 것이다.
넷째 계명을 지키는 대신에 국가의 법률과 일치되도록 거짓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세력에 충성하는 표가 되는 한편,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창조주께 충성하는 증거가 된다. 그리하여 한 계층의 사람들은 세상의 세력에 복종하는 인을 받음으로써
짐승의 표를 받는 반면에 다른 한 계층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충성하는 표를 받는 길을 택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된다.”(쟁투, 605)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분의 요구에 지나치게 까다롭지 않으시다는 것과, 그처럼 큰 손실을 당하면서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키거나
그들이 국가의 법과 상치되는 곳에 놓이는 것이 그들의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인간의 요구보다 더욱 존중할 것인지 않을 것인지 하는 시험을 받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들과 그분을 존중하지 않는 자들을 구분해 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충성심을 입증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하나님께서 각 시대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취급하신 역사는 그분께서 엄격한 순종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교권, 268)
지금까지 인용한 모든 말씀들이 곧 셋째천사가 지성소에 있는 법궤를 보여주고 또한 주께서 법궤의 뚜껑을 열어서
하나님의 율법을 보여주시며 특별히 빛나는 넷째 계명을 보여주신 목적인 것이다.
셋째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숭경하고 특히 넷째 계명을 충성스럽게 지키는 것이 모든 자들의 경험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특별한 경험이 있다. 셋째천사의 기별자들은 어느 시대의 사람들도 겪지 않았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특수한 경험과 훈련이 요구됨을 이해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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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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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소안에 있는 법궤 속에는 만나가 들어있는 금 항아리가 있다 (히 9:3, 4 참조).
만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주신 음식이다. 인간들에게는 먹는 음식이 항상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그랬고 각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먹는 문제로 실족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 특별히 넷째 계명인 안식일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시험하셨다(출 16:4, 5 참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만나를 거두어 항아리에 담아 지성소 법궤 안에 간수하게 하셨다(출 16:33, 34).
왜 하나님께서 이 만나를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 속에 보관하게 하셨을까?
보관하는 이유는 훗날 어떤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교훈을 주기 위해 기념으로 보관하는 것이다.
아론의 손으로 법궤 안에 보관했던 만나항아리는 두 돌비와 함께 없어진지 오래였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만나 항아리를 하늘 성소에서 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론을 시켜 만나를 보관토록 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간수하도록 하신 것은 분명 목적이 있으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일찍이 바울은 계시 가운데서 지성소에서 법궤와 함께 만나항아리가 있음을 보았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만나항아리가 성소 첫째 칸이 아닌 둘째 칸 지성소에 법궤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성소의 문이 언제 열렸는가? 2,300주야의 끝, 곧 1844년 10월 22일 이후이다.
셋째 천사가 지성소의 열린 문을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아론을 통하여 만나 항아리를 법궤 곧 지성소에 보관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실제적인 대속죄일을 살아가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 그 만나 항아리는
보관되었던 것이다. 엄숙한 대속죄일을 살아가는 오늘날 당신의 백성들이 먹을 음식에 대한 교훈이 되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속죄일에 금식했다. 만약 그날 금식하지 않는 자는 죽임을 면치 못했다.
'그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레 23:29). 오늘날 실제적인 대속죄일을
살아가는 셋째천사의 기별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지정하여 주신 음식들에 관한 특별한 기별을 가지고 있다.
곧 절제 기별이다. 만나 항아리가 두 돌비와 함께 있었던 것은 지성소 시대를 살다가는 자들에게는
이 절제 기별이 율법처럼 중요한 기별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 절제기별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시험하는 기별이 될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이 만나를 통하여 율법을 순종하는지의 여부를 시험하였던 것과 같다.
또한 절제 기별은 고대 이스라엘이 대속죄일날 금식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같은 기별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날에 음식을 먹는 자들은 백성 중에서 끊어졌다.
대속죄일의 엄숙한 날을 살아가는 셋째천사의 기별자들은 왜 자극적인 음식과 육식을 금식해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금식한 것은 공연히 자신을 괴롭히는 자해행위가 아니요
금식함으로 정신을 맑게 하여 자신의 죄를 살피며 겸손히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우리들의 참된 금식은 무엇인가? 다음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자.
“ 모든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금식은 모든 자극성 음식류를 금하고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준비하신 건강에 좋고 단순한 음식을 합당하게 사용하는 것이다.”(음식, 188)
“나는 건강 개혁이 셋째 천사의 기별의 일부이며, 마치 팔과 손이 인간의 육체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 기별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이 큰 사업에서 전진해야 할 것을 보았다. ”(1증언, 486)
세 천사의 기별이 얼마나 중요한 기별인가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강을 핑계 삼아 육식을 즐기고 탐식하는 자들의 운명은 무엇인가?
그 영혼에게는 분명히 화가 미칠 것이다. 그들은 품성을 변화시키는 일에 실패할 것이다.
“식욕의 지배적 힘이 수많은 사람들을 멸망시키고 있음이 입증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 점에서 승리했을 것 같으면, 그들은 사단의 다른 모든 유혹에서 승리할 도덕적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식욕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하는 일에 실패할 것이다.
육천년간에 걸친 인간의 계속적인 범죄는 그 열매로서 질병과 고통과 사망을 가져왔다.
우리가 마지막에 접근할수록 식욕의 방종에 대한 사단의 유혹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고, 승리하기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3증언, 491)
“육식하는 문제에 관하여 지금 절반쯤만 개심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더 이상 동행하지 않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갈 것이다.”(음식, 38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만약 우리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지 못하여 부절제를 용납한다면, 그는 품성 건설에 실패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엄숙한 대속죄일을 살아가는 재림성도들은 이 건강기별이야말로 참으로 귀중한 기별이며
반드시 순종해야 할 기별이다. 만약 불순종한다면 백성 중에서 끊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셋째 천사의 기별자들은 이 절제기별로 말미암아 온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게 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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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싹난 지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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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지성소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과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었다.
고대이스라엘 역사에서 아론의 싹 난지팡이의 내력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당을 짓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여 일어났던 사건을 민수기 16장을 보면 그 역사가 나온다.
하나님께서 임명하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모세를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권위를 무시함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였다.
그들은 백성들을 선동하여 자칭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려고 하였으며 모세의 지도력에 반항하여 일어났던 사건이다.
이 일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참된 지도자가 누구인지 백성들에 밝히셨다.
각 지파로 족장들의 지팡이 열둘을 거두어 하나님의 성소, 곧 지성소 증거궤 앞에 두었다.
그 이튿날 지팡이들을 내어본즉 레위지파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나있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내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다시금 지성소 언약궤 안에 보관하였던 것이다(민 17:10 참조).
하나님에서는 이 반역 사건이 종결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이 지팡이를 지성소에 보관토록 하신 것은 분명 목적이 있으셨으며 우리들의 연구 주제가 되는 것이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그 이후 한번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용된 적이 없이 지금까지 그 지팡이는 하늘 지성소에 보관되어 온 것이다.
히브리서 9장 3, 4절을 볼 때 확실하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지성소에 보관되어 있는 것은 지성소시대(대속죄일)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지팡이가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셋째천사의 기별을 받은 백성들에게 참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확인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오늘날의 교육제도를 볼 때 그렇다. 형식과 외식, 그리고 학위제도에 의하여 선출된 지도자들을 과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지도자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점이다.
바벨론(천주교)으로부터 유래된 학위제도와 자격제도에 의하여서만이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교육제도는 성경적이 될 수 없다.
철저한 지식과 이론을 중시하는 학위제도는 결코 올바른 영적지도자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경쟁을 유발하고 남보다 높아져야 만이 인정받을 수 있는 시험위주의 학위나 자격제도는 그리스도의 온유, 겸손한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져야 한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이들에게는 소경처럼 되고 말았다.
영적지도자로서의 참된 자격은 품성을 통하여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로 모든 교육제도가 변경되어야 하고
모든 학교교육은 세상에 인정받기 위한교육이 아닌 그리스도의 품성을 배우는 그런 학교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참된 교육의 목적은 '의롭고 균형 잡힌 품성을 계발시키는 일이다'(CT 51; 4T 425).
우리들의 교육목적과 우리들이 추구하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체험적인 지식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교육제도는 참된 영적 지도자를 길러낼 수 없다.
옛날 유대인의 경험은 우리들의 경고가 될 것이다. 가장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 누구였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아닌가? 형식과 외식으로 치우친 그들의 교육 제도는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그처럼 중요하게 생각하는 랍비교육을 외면하셨던 것이다.
“유대인 교사들은 의식에 대한 문제들에 그들의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의 마음은 배우는 자에게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하늘에 있는 더욱 높은 학교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할 그런 요소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임으로 얻어지는 경험은 그 교육 제도에 그 자취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외양적인 것들에 열중한 학생들은 하나님과 조용히 보낼 시간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였다. 그들은 지식을 찾는 가운데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돌아섰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장 요긴한 것이 무시를 당하였다.
율법의 원칙들은 모호해졌다. 탁월한 교육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참된 향상에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소망, 69)
그때의 교육과 오늘날 삼육 교육과는 너무도 흡사하게 되어 있지 않은가?
현재의 교육 방법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지 결코 하늘나라를 가기 위한 교육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교육이 학위제도와 형식위주로 흘러가는 동안은 진정한 영적 지도자를 배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다시금 당신의 지성소에 보관하신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하여 이 시대의 참된 지도자가
누구인지 판가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 시대를 위하여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하늘지성소에 보관된 것이다.
다음의 말씀을 읽어보자,
“그와 같이 셋째 천사의 기별은 선포될 것이다. 그 기별이 가장 큰 세력으로 전파되어야 할 때가 오면 주님께서는
마음이 겸비한 자들을 통하여 일하시고 자신들을 주님의 사업에 바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도하실 것이다.
일꾼들은 교육 기관에서의 훈련보다 오히려 성령의 은혜를 받음으로써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쟁투, 606)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을 능히 쓸 수있으시며, 또 그러한 사람을 쓰실 것이다.
이렇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불신을 드러내는 것이며, 전능하신 자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다른 사람을 신임치 않는 조바심이 적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교회 안에 있는 많은 능력을 사용치 못하게 하며, 그 길을 막아 성령께서 사람들을 사용하시지 못하게 한다.”(복음, 488)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오늘날 잘못된 교육 제도를 예견하신 하나님께서 이를 위하여 하늘지성소에 보관하여 두신 것이다.
사단은 오늘날 우리들의 자녀들을 교육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모두 빼앗아 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이 교육제도를 개혁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은 모두 사단에게 빼앗기고 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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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닻 - 견고한 토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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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세 천사의 기별 가운데 있는 완전한 진리의 연결을 보고 그 순서대로 즐거이 받아들여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하늘 성소로 들어갔다.
이 기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닻이 된다고 하였다. 이 기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자들은 사단의 수많은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초기, 256)
오늘날 이 세상에는 사단이 창안한 많은 오류들이 편만해 있다.
진리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많은 오류들이 첫째와 둘째천사의 경험이 없고 셋째천사의 경험 속에 살아가지 않는 자들을 미혹하고 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 전했던 두 천사의 기별을 체험하지 못하였다.
사단은 그것을 알고 그의 악한 눈을 그들에게 돌려 저들을 넘어뜨리려 하였다.”(초기, 256)
진리와 오류와의 싸움은 육천년 동안 계속되어 온 율법 전정의 일부분이다. 다음의 말씀을 보자.
“대기만자는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하여 여러 가지 오류, 곧 그가 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취미와
적성에 맞도록 준비한 여러 가지 이단설을 전하는 많은 부하들을 가지고 있다” (쟁투, 520)
“사단은 속임수를 써서 천사들을 유혹했다. 그뿐 아니라 그러한 기만을 가지고 그는
각 시대를 통하여 사람들 중에서 그의 사업을 추진시켜 왔으며, 세상 끝까지 이 정책을 쓸 것이다.
만일 그가 공공연하게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대하여 싸우고 있다고 공언한다면 사람들이 그를 경계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변장하고, 진리에 오류를 뒤섞는다. 가장 위험한 형태의 거짓은 진리와 혼합되어 있는 거짓이다.
영혼을 사로잡고 파멸시키는 오류는 이렇게 해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 방법으로 사단은 세상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부조, 338)
이와 같은 사단의 오류에서의 안전은 무엇인가? 세 천사의 기별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자들만이 이와 같은 기만에서 안전할 것이다.
'이 기별들은(세 천사의 기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닻이 된다고 하였다'(초기문집 256).
왜 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은 미혹당하지 않는가?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첫째천사의기별로 철저한 회개가 이루어지고 둘째 천사의 기별로 죄와 죄인에게서 분리되어 있고
셋째천사의기별을 받아드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건강기별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은 이 기별이외에 또 다른 진리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세 천사의 기별은 완전한 진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미혹하는 기별도 이런 사람들은 미혹하지 못할 것이다.
내일 예수님이 오신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고 영접할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은 결코 자만이나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믿고 신뢰하는 진실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 천사의 기별의 경험은 시기를 정하는 것보다 더 강한 능력의 기별인 것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시기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갖고있으며 그 기별 자체의 기초 위에 서 있으므로
시기가 그것을 강하게 할 필요가 없음을 보았다.” (초기, 75)
이와 같이 첫째천사와 둘째천사와 셋째천사의 경험은 우리들의 신앙에 견고한 토대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경험적으로 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자들이 진정한 셋째천사들인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경험적인 기별 자들을 화잇 선지자께서는 '힘센 천사라고' 말씀하셨다.
과연 나는 이와 같은 경험적인 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였는가?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해 보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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