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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예루살렘도성의 페스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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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 중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날에 쓴 실망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이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갖지 못하였다. …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만 거룩한 성문을 통과할 패스포트를 갖게 될 것이다.”-7주석, 970.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패스포트의 중요성을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장차 우리가 들어 갈 새 예루살렘도성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 곧 패스포트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진리의 원수들은 예수께서 닫으신 성소의 문을 열려고 하며 그가 1844년에 열어 놓으신 지성소의 문을 닫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지성소 안에는 여호와의 손가락으로 기록한 열 가지 계명이 새겨진 돌비가 들어 있는 법궤가 있다.
사단은 이 인치는 시기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현대진리에서 돌이켜 그들이 흔들리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계략을 다 쓰고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환난의 때에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을 덮어씌울 덮개를 가지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진리 편에 서서 마음을 순결하게 보존한 영혼에게 전능자의 보호막이 씌워질 것이다.”-초기, 43.
여기에 사단의 계략이 나타나 있다. 사단은 이 인치는 시기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현대진리인 인치는 기별에
무관심하도록 하고 있다는 말씀은 실로 의미심장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말씀을 보도록 하자
“사단은 인치는 시기가 마치고 하나님의 보호막이 그분의 백성에게서 거두어지기까지 온갖 간계를 다 써서 그들을 그러한 처지에 붙들어 놓기 위하여 애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마지막 일곱 재앙이 내릴 때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초기, 44.
“나는 사단이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혼란시키고 속이고 유혹하는 일을
바로 지금 곧 인치는 시기에 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진리에 굳게 서 있지 않았다.”-초기, 44.
“주님께서 나에게 현대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면서도 그것과 일치하는 생활을 살지 않는 사람들을 보여 주셨다.
경건에 대한 그들의 표준은 너무 낮아서 성경의 거룩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초기, 47.
사단은 이 인치는 시기동안 온갖 계략을 다하여 현대진리에서 관심을 돌리게 하여 인을 받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문제는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은혜의 시기가 마칠 때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를 받을 두 무리밖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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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치는 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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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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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인-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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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인침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이미 모든 시대마다 충성스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령의 인침이 있었다. 이것은 구원의 표요, 보증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엡 1:13.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 딤후 2:19.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인침(영광)이 떠나갔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값없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 공로를 힘입은 자들은 다시 인을 받게 되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2)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성령의 인과는 다르게 1844년부터 그 사업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쳐지지만 그 사업은 다니엘 8장 14절의 예언과 관련하여
2300주야의 긴 예언과 하늘 성소의 정결로 인하여 이 땅에 탄생될 특별한 백성들에게 쳐질 ‘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침으로 구원받는 무리들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침으로 구원받을 무리가 있을 것을 알게 된다.
상기할 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은 재림성도들은 모두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으므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과 안식일을 깨닫지 못하고 일요일을 지키는 개신교도들은 비록 그들이 구원받는다 하더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 중 넷째계명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셋째 천사의 기별로 말미암아 탄생될 백성들이며 특히 안식일 계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다음의 말씀을 유의해보자.
“열 계명 중에서 오직 넷째 계명만이 위대하신 율법 제정자, 하늘과 땅의 창조주의 인을 포함하고 있다.”-6증언, 350.
“하나님의 표징, 혹은 인은 주님의 창조의 기념일인 제 칠일 안식일의 준수에서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출 31:12, 13).여기에 안식일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표징으로 분명히 나타나 있다.
짐승의 표는 이것과는 반대로, 주일 중 첫째 날의 준수이다.
이 표는 교황의 권위와 최상권을 인정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들과를 구분한다.”-8증언, 117.
“이 넷째 계명은 열 계명 중에 입법자의 이름과 직함이 들어있는 유일한 계명이다.
그것은 또 누구의 권위로 율법이 주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유일한 계명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율법의 진정성과 구속력의 증거로서 그분의 율법에 찍힌 하나님의 인을 포함하고 있다.”-부조, 307.
“하나님의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지 섬기지 않는 지를 구분하는 표이다.”-7주석, 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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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하나님의 품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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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을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인침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십사만사천인들에게는 계시록 7장에 나오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 쳐진다.
이 인침은 마지막 야곱의 환란을 통과할 모든 사람은 반드시 받아야할 인인 것이다.
이 인은 십계명 중 넷째 계명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쳐질 수 없다.
그러나 단지 안식일을 지키는 것만으로 인침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온 율법을 모두 지킴으로 인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사 8:16)는 말씀은, 곧 십계명이 인이며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임을 알려 준다.
“그들은 가장 엄숙한 기별 아래 살며 그것을 전파하며, 하나님의 법을 품성의 시금석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으로 제시하면서도 거룩한 계명들을 범하고 있다.”-2증언, 468.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온전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그분의 율법은 그분의 품성의 사본(寫本)인 동시에모든 품성의 표준이 된다.
이 귀한 표준을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구성할 백성들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 오해가 없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는 하나님의 율법의 완전한 표현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갖게 될 때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수 있게 될 것이다.”-실물, 314, 315.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품성을 받는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8)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온전하게 되기를 바라고 계신다.
“지금은 준비할 시간이다. 하나님의 인은 부정한 남녀의 이마에는 결코 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야망적이요 세상을 사랑하는 남녀의 이마에도 결코 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거짓된 혀나 속이는 마음을 가진 남녀들의 이마에는 결코 쳐지지 않을 것이다.
인을 받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하늘의 후보자들이어야 한다.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앞으로 전진하라.
나는 다만 이 시점에서는 이 점들을 간략하게 써서 준비의 필요성에 그대들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을 뿐이다.
현 시기의 놀랍고도 엄숙함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대들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라.”-5증언, 216.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품성 속에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만이 찍혀질 것이다.”-7주석, 970.
“하나님의 보좌 앞에 흠 없이 설 십사만사천 명을 인치는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자들의 잘못을 가장 깊게 느낄 것이다.”-3증언, 266.
“우리는 그의 충만하심을 위하여 곧 목표가 우리 앞에 선명한 것 같이 그의 품성의 완전함이 우리 안에 새겨지기를 간구하고 있는가?
주의 백성이 이 목표에 도달하면 그들은 이마에 인침을 받을 것이다.”-6주석, 1118.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완전한 품성의 소유자들에게만 쳐진다는 사실은 실로 엄숙하고도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치는 기별인 현대진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흠 없이 설 십사만사천인 후보자들의 각오와 결심이 어떠해야 함을 깨닫게 한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도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제 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백성은 십사만사천 무리의 후보자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 되는 안식일을 지키며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844년에 이 땅에 내려온 셋째 천사는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여 인을 치는 것이다.
우리는 십사만사천인의 후보자가 된 것만으로도 우리들은 감격해야할 일이다.
그러나 잘못된 사상이 만연되어 있다. 십사만사천 무리에 들어가지 못하면,
헤일 수 없는 허다한 무리에 들어가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오히려 십사만사천 무리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은 교만한 마음이며 마치 자신의 믿음을 과신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낌을 받는다.
더 안타까운 일은 헤일 수 없는 무리의 구원으로 만족하게 생각하는 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단은 오늘날 인치는 기별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을 갖게 하여 마치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하위권 대학에 들어가면 되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한다. 그리고 구원이 경쟁에 의하여 결정되거나 구원에 등급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십사만사천의 구원과 헤일 수 없는 무리의 구원이 다른 것은 아니다.
똑같이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조건으로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영생을 얻는 조건은 지금도 옛날-에덴 낙원에서 우리의 시조(始祖)가 타락하기 전-과 똑같으니 곧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는 완전한 의가 요구된다.
만일에 영생을 이보다 약한 조건으로 허락하여 준다고 하면 온 우주의 행복은 위협을 받게 될 것이고 모든 재화와 비참을 일으키는 죄가
영원히 불멸(不滅)할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정로, 62.
십사만사천인과 헤일 수 없는 허다한 무리와의 차이는 받은바 빛의 분량과 시대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두 달란트를 맡긴 자에게 열 달란트를 요구하지 않으신다.
또 다섯 달란트를 맡은 자가 여섯 달란트를 남긴다면 결코 칭찬할 수 없을 것이다.
일요일교인들이 구원받는다고 하여 그들은 쉽게 구원을 얻고 그들의 생애 가운데 죄가 용납되거나 알고 있는 진리를 불순종하면서도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똑같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받은바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함으로 영생을 얻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흠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넷째 계명을 깨닫지 못하여 지키지 못한 것이 흠이 될 것이다.
세 천사의 기별을 받은 재림신자들은 어떤가! 그들과는 달리 완전한 빛을 받았다.
흠과 점이 없는 완전한 진리를 소유하였기에, 우리들에게는 흠과 점이 없는 완전한 품성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셋째 천사는 저들을 지성소로 향하게 하였으며 과거의 기별들에 경험을 가진 자들은 그들에게 하늘 성소의 길을 가리켜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 천사의 기별 가운데 있는 완전한 진리의 연결을 보고 그 순서대로 즐거이 받아들여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하늘 성소로 들어갔다.
이 기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닻이 된다고 하였다.
이 기별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자들은 사단의 수많은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초기, 256.
세 천사의 기별은 완전한 진리이기에 이 진리를 받은 자들이 품성에 흠과 점을 남기는 것과 완전한 빛을 받지 못하여 흠과 점을 남긴
일요일교인들과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신다. 받은바 빛에 의하여 심판하실 것이다.
1844년 이후 하나님께서는 세 천사들을 통하여 완전한 진리를 공개하시고 이 기별을 받은 한 백성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치시는 것이 구속의 경륜 가운데 계획되어 있다.
이 무리들의 수효가 십사만사천인이라는 말이다. 완전한 진리인 세 천사의 기별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사천 무리에 속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구원에 실패하는 것을 의미하며 구원을 받는다면 십사만사천인의 특권을 누리게 된다.
계시 가운데 셋째 천사는 힘 있는 천사로 묘사된 것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치는 기별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사실 그대로 힘 있게 믿음으로 영혼들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차든지 더웁든지 하게”(계 3:15)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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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환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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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 보라 남자마다 해산하는 여인같이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 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 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렘 30:5-7.
범죄이후 인간들이 경험하는 최대의 고통을 여인들의 해산 고통을 말하고 있지만 십사만 사천인들이 당할 야곱의 환란은 남자가 해산하는 고통으로 표현하고 있다.
세상이 존재한 이후로 아직 남자가 아기를 해산한 역사는 없었다.
그처럼 십사만 사천인들이 당할 야곱의 환란은 이 세상이 존재한 이후 지금까지 없었던 환란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곧 개국 이래로 없었던 환란을 경험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비가 섞이지 않는 재앙이 내리는 동안 성령이 거두어진 세상에 중보자 없이 하나님 앞에 살아서 야곱의 환란을 통과 할 자들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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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자가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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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사만 사천인들의 경험은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않았던 경험을 하게 될 것인데,
그들은 중보자가 없는 생애를 경험하게 된다. 아담 이후 중보자가 없는 상황에서 살아온 자가 어디 있는가?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죄에서 승리한 자가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십사만 사천인들은 그리스도의 중보와 성령이 거두어진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자들이다.
중보자가 없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성경에는 기라성같이 우뚝 선 믿음의 영웅들의 이름이 나온다. 노아,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윗 등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믿음의 노독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중보자가 없었다고 생각해보자.
다윗이 범죄 하였을 때,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치고 화를 냈을 때, 아브라함과 야곱이 거짓말을 했을 때, 노아가 술을 먹고 실수를 했을 때,
비록 단 한 번의 실수였다 할지라도 누가 그들의 죄를 그의 기록 책에서 지울 수 있으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은혜의 시기가 끝난 후에, 십사만 사천인들의 생애에는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은
그들에게는 중보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경험이 아닌가?
한 번의 실수는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이 될 것이며,
두 번 다시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는 중보자가 없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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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거두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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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끝났다.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그분의 사랑을 멸시하고 그분의 율법을 유린하였다.
악인들은 그 은혜 시대에 주어진 기회를 잃어버렸고, 계속적으로 거절당한 하나님의 영은 마침내 거두어졌다.” -쟁투, 614.
성령이 떠나버린 세상에서 홀로서는 경험은 어떤 것일까?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다. 신성의 능력이 충만하신 성령은
우리에게 의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깨닫게 하여 주셨다.
시간과 공간에 장애를 받으심이 없이 성령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함께 하셔서
친히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발길을 인도하여 주신 분은 성령이셨다.
우리들이 연약하여 빌 바를 알지 못하고 당황할 때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대언 간구하신 분이 누구이셨던가?
죄의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며 실망하여 기도할 때에 마음속에 속삭이시며 십자가로 인도하신 분은 누구이신가?
사단의 시험과 유혹으로부터 구원하시며 죄를 이길 힘과 능력을 주신 분은 누구이시며
구원의 기쁨과 확실한 소망으로 기쁨을 충만케 하신 분은 누구이셨던가? 바로 보혜사 성령님 이셨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었던 성령께서 이 땅에서 떠나가신 후에 십사만 사천인들은 마귀와 싸워야 한다.
두려운 것은 악인들을 억제하던 성령이 떠나버린 이 세상은 악령이 모든 사람을 지배할 것이며
악령의 지배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십사만 사천인들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겠는가?
“얼마 후에 나는 성도들이 큰 정신적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지상의 악한 거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대적하였다.” -초기, 283.
사단과 악인들이 십사만 사천인들을 에워싸고 위협할 때 누가 그들을 위로 할 것이며 어디서 도움이 올 것인가?
더욱이 두려워 할 것은 사단은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들을 모두 기억나게 할 것이며 그것들을 더욱 과장하고 크게 하여 제시 할 때,
마치 하나님의 은총에서 자신이 제거된 것처럼 주장할 때에 성령이 거두어진 세상에서 어디서 위로를 받을 것인가?
마치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은 느낌에서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던 경험처럼 될 것이다.
야곱의 환란은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며 두려운 것이 된다.
이 때에 만약 회개하지 않은 죄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만일 야곱이 속임수로 장자의 상속권을 빼앗은 죄를 사전에 회개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심으로 그의 생명을 자비롭게 보호해 주지 아니하셨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민과 공포로 괴로워할 동안
만일 아직 자복하지 아니한 죄가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되면 그들은 압도당하고 말 것이다.” -쟁투, 620.
이와 같이 십사만 사천인들은 아담 이후, 그 어떤 사람도 경험하지 않은 중보자가 없는 경험과 성령의 도움이 없는 가운데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 6:12)과 싸우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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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시련과 비교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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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참소와 변명 그리고 여러 가지 구실들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성도들의 진실을 증명하는 기회가 된다. 욥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하나님께서 욥의 진실을 칭찬 하였을 때 사단은 참소와 여러 가지 구실을 들어 욥의 진실성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 1:8.
그 때에 사단은 말하기를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욥 1:9, 10)라고 참소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욥은 까닭도 모르는 혹독한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증명하여야 하였다.
욥은 그 입술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진실과 순결을 시련 중에서도 생애로 증명하였다.
결과적으로 사단은 패배하였고 하나님은 욥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셨다.
이와 같이 십사만 사천인들이 중보자도 없이, 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가운데서
야곱의 환란을 통과해야 하는 것은 구속의 경륜 가운데 반드시 요구되는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이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한 것에 대하여 사단이 비난함으로 주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시험하도록
사단에게 허락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들의 확신과 믿음과 견인불발의 정신은 격렬하게 시험을 받을 것이다.” -쟁투, 618.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십사만 사천인들의 믿음과 순결을 알지 못하셔서 그들을 그처럼 혹독한 시험을 통과하게 하시리라고 생각하지 말자.
사단의 참소와 비난은 십사만 사천인들이 야곱의 환란을 통과함으로서만이 침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없다면 사단의 참소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대쟁투가 끝나게 될 때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구속의 경륜이 완성되며 하나님의 성품은 창조함을 받은 모든 지적 존재자들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교훈은 완전하고 영원 불변하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 그 때에 죄는 그의 본성을 드러내고 사단은 그의 성격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죄가 근절됨으로 인하여 당신의 뜻을 행하기를 즐거워하고 저희 마음속에 당신의 율법이 있는
우주의 거민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옹호되고 그분의 영광이 확립될 것이다.” -소망, 7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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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이유-사단의 참소를 끝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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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에녹과 같이 죄의 기록을 갖지 않고 완전한 승리의 생애를 살아간 사람들의 기록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죄악 세상에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죄에서 승리한 것은 성령의 도우심과 중보자의 도움 없이 승리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인류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사단의 능력을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의 생애에서도 그들이 승리한 것은 중보자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 아래에서의 승리였던 것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 아래서의 그들의 승리를 사단이 인정하겠는가?
그렇다면 어찌 사단의 비난과 참소를 피할 수 있을까?
십자가 우편의 강도가 구원을 받는 것에 대하여 사단의 참소가 없겠는가?
그가 만약 생명이 더 연장되었더라면, 나는 그를 범죄케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참소자의 항의가 있지 않겠는가?
만약 사단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요행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어찌 될법한 말인가?
사단은 이 지상에 살았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승리의 생애를 인정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참소 하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중보와 성령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들이 승리의 생애를 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을 범죄케 할 수 있었다고 항변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단의 참소와 비난을 논박할 존재들이 구속의 경륜 가운데 요구되는 것은 너무도 절실하고 당연하다.
십사만 사천인들의 승리는 우편 강도의 생명이 연장되었더라면 그를 범죄케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단의 항변도 그 때는 힘을 잃을 것이다.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의 승리는 인류도 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보증이었고 십사만 사천인들의 승리는 그것의 실증이다.
그리스도의 중보와 성령이 거두어진 가운데서 사단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는
이러한 사단의 주장을 논박하는 완전한 승리요 아담 이후 믿음 안에 잠든 모든 성도들의 승리가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머리요 모든 성도들은 한 지체요 한 몸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 13).
이들의 승리로 말미암아 육천년 동안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았던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율법은 결함이 없고 온전하며 순종할 수 있다는 완전한 증거를 갖게 되실 것이다.
이제 사단은 더 이상 변명할 수 없이 죄악의 창시자임이 온 우주와 모든 거민들에게 폭로된다.
“대쟁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하나님의 품성을 그릇 나타내고, 그분의 율법에 대하여 반역을 선동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었다.
이 일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기만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반역하였다.
그러나 악의 활동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목적은 차근차근 성취되어 간다.
그분께서는 창조함을 받은 모든 지적(知的) 존재들에게 당신의 공의와 자애를 드러내고 계신다.
사단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전 인류가 하나님의 율법의 범법자들이 되었지만, 그분의 아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아버지의 율법을 순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각 시대마다 배교와
반역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진실한 백성 곧 마음에 그분의 율법이 있는 백성을 모으신다(사 52:7). …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취급하심이 그토록 오랫동안 은밀하게 수행되어온 일의 정체를 완전히 폭로시키게 될 것이다.
사단의 통치의 결과 곧 하나님의 율법을 도외시한 결과가 창조함을 입은 모든 지적 존재자들의 목전에 나타날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의 율법은 온전히 옹호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그분의 백성의 영원한 행복과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들의 행복을 염두에 두고
행해져 왔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사단 자신도 온 우주가 보는 데서 하나님의 정부의 공의와 그분의 율법의 의로움을 고백할 것이다.” -부조, 338, 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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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익은 구속의 열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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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계 14:4.
열매는 나무의 진가를 판가름하는데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실례를 들어보면,
극상품 포도나무와 들포도나무의 외부적인 모습으로는 어느 나무가 극상품인지 구별이 쉽지 않다.
물론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구별이 어렵지 않으나 어떤 사람이
전문가의 지식을 무시하고 들포도나무를 극상품 포도나무라고 우겨댄다면 참으로 난처할 것이다.
물론 그에게 상세하게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둘의 차이점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고집 센 사람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두 나무에서 열매가 맺혀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아무리 고집이센 사람이라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열매는 가장 강력하게 진실을 말해주는 논증이 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시작된 율법 전쟁도 그렇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보면서도
사단은 줄기차게 하나님의 율법은 결함이 있어 순종할 수가 없으며 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나님께서는 육천년 동안 무던히 참으시는 가운데 극상품 포도나무에서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려 오셨다.
2300주야의 긴 예언이 지나고 암흑시대를 지나 하늘 성소가 정결하게 되기 시작한 1844년부터
극상품 포도나무인 셋째 천사의 완전한 기별에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온 천사”는 구속의 열매가 맺힐 때마다 인을 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천사는 이와 같은 구속의 열매들이 십사만 사천이 될 때까지 수효를 세며 인을 치고 있다.
이 무리들이 육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경영하신 복음의 농원에서 자란 의의 나무의 열매들이요 구속의 열매들이다.
“나는 천사들이 하늘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한 천사가 잉크 통(뿔로 만든)을 가지고 지구에서 돌아와 예수님께 자기의 일이 끝났음을 보고하고 성도들의 수가 차서 인치는 사업이 마쳤음을 보고했다.
그러자 나는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 앞에서 봉사하시던 예수께서 향로를 내던지시는 것을 보았다.” -초기, 279, 280.
“천사들은 하늘에서 분주히 왕래하고 있다. 지상에서 돌아온 한 천사는 그의 일이 마쳐진 것을 보고한다.
마지막 시험이 이미 세상에 주어졌고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한 것이 입증된 사람들은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계 7:2)을 받았다. … 주님의 백성의 수효는 찼다.” -쟁투, 613.
“이스라엘이여,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품으라. 포도원 주인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모든 민족과 백성들 중에서
오랫동안 바라시던 귀한 열매들을 모으고 계신다.” -선지, 22.
십사만 사천인들이 야곱의 환란을 통과할 즈음이면, 아무리 고집이 세고 거짓의 아비라 할지라도 사단은 고개를 숙이고 말 것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중보와 성령의 도움이 없이도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아, 얼마나 멋진 구속의 경륜이며 완벽한 승리인가? 참으로 무한히 자비로우시고 은혜가 많으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무력과 힘으로 아니 하시고 지혜와 사랑으로 원수를 정복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죄와 죄의 창시자인 사단은 영원히 도말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말 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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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사만 사천인과 헤일 수 없는 무리는 같은 무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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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 두 무리의 형성과정
어느 때부터인지는 몰라도 십사만 사천 무리들은 아담 이후 구원받은 모든 무리들을
상징하는 숫자라는 견해가 재림교회 안에 확산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림교회에서 발행한 기관지에서 또는 교역자들의 글 가운데서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먼저 이 문제를 연구해 보도록 하겠다. 먼저 계시록 7장에 있는 말씀을 보도록 하자.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 7:1-16).
계시록 7장 1-3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계시를 보는 가운데 네 천사가 땅 사방에서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는 모습과 동쪽에서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았으며 그 천사가 바람을 잡고 있는 네 천사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붙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다.
또 4절-8절에는 인 맞을 백성의 수효는 144,000명이 될 것이요
그 무리들은 이스라엘 열두지파 에서 각각 12,000명이 되는 계시를 보았다.
그 다음 계시의 장면이 바뀌고 9절-12절에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 7:9)
하나님과 어린양 앞에 경배하며 찬양하는 헤일 수 없이 많은 구원받은 무리들을 보았다.
다시금 요한은 장로 중 한 사람에 의하여 계시 중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는데 흰옷을 입은 또 한 무리를 보게 되었다.
이때 장로 중에 하나가 말하기를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계 7:13) 라는 질문을 요한에게 하였다.
그런데 요한은 헤일 수 없이 많은 무리들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 중에서 온 것을 알았으나(9절 참조)
장로가 질문하는 ‘이 흰옷 입은 자들은’ (13절)어디서 왔는지를 몰랐다.
그러므로 요한 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장로는 그 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말해 주었다(14-16절).
그들은 ‘큰 환란에서 나온 자’들이며,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한자’들이며,
‘주리고, 목마르고, 뜨거운 태양의 기운에 상하지 아니한, 자들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 큰 환란에서 구원 받은 자가 누구이며 7재앙의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목도한자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144,000인들을 가리켜 하는 말인 것이다.
요한은 계시록 7장에서 구원받은 두 무리를 계시 중에 분명히 보았다.
계시 가운데 요한에게 말씀하신 분이 누구이신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계 1:1)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무리의 수효가 144,000인이라고 요한에게 보여주신 분은 예수그리스도이셨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이 144,000무리는 셀 수 없는 허다한 무리들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하여 보라.
요한은 분명하게 인 맞은 수가 144,000인이라는 말을 들었고 12지파에서 각각 12,000명, 그래서 144,000명을 확인했다(계7:4-8).
“이 일 후에” 곧 144,000명을 확인한 후에(9절)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 두 무리가 같은 무리들인가?
혹자는 말하기를, 144,000무리도 많은 무리이기 때문에 요한이 셀 수 없는 무리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계시는 인간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의 세계이다.
요한이 육신의 몸으로 하늘에 올라간 것이 아니다. 하늘의 계시를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요 육신의 귀로 들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요한이 마치 육신의 눈으로 계시를 본 것처럼 144,000명이 많기 때문에 셀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은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계시록7장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다.
헤일수 없는무리 - 각 나라, 백성, 방언에서 나온 구원 얻은 셀 수 없는 무리들.
십사만 사천인 - 큰 환란(야곱의 환란)에서나온, 그리고 칠 재앙에서 구원받은 무리들.
연구2 - 성령의 인과 하나님의 인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 1:13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 침이 있어 일렀으되 …” 딤후 2:19.
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인 침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이미 모든 시대마다 충성스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령의 인침이 있었다. 이것은 구원의 표요 보증으로 주어진 인침이었다.
“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 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2)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성령의 인과는 다르게 시기적으로 1844년부터 그 사업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다니엘 8장 14절의 예언과 관련하여 2300주야의 긴 예언과 하늘성소의 정결로 인하여 이 땅에 탄생될 특별한 백성들에게 쳐질 인인 것이다.
상기할 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은 재림성도들은 모두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으므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과 안식일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일요일 개신교도들은 비록 그들이 구원받는다 하더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인’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 중 하나님의 인이 되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셋째 천사의 기별로 말미암아 탄생될 백성들이며, 특히 안식일계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셋째 천사의 기별로 구원 얻을 백성들에게 쳐지는 인이요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은 일요일 교인들에게는
쳐질 수 없으며, 안식일이 시험거리가 될 수 없었던 1844년 이전에는 쳐질 수 없는 인 인 것이다.
1844년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진 셋째 천사가 이 땅에 내려와 인치는 사업을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열 계명 중에서 오직 넷째 계명만이 위대하신 율법 제정자, 하늘과 땅의 창조주의 인을 포함하고 있다.”
-6증언, 350.
안식일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요 셋째 천사의 인치는 사업이 1844년부터 시작된 것이 확실하다면
아담 이후 셀 수 없는 큰 무리들과 144,000무리들은 동일 한 무리가 될 수 없는 것이 확실하다.
이상을 요약 해보면 다음과 같다.
헤일 수 없는 큰 무리 - 성령의 인침을 받음.
십사만 사천인 -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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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00인의 숫자는 상징인가 실제적인 수효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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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 성경이 스스로 말씀하고 있음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4).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1, 3).
144,000명이 실제적인 숫자라는 것을 인간들이 어렵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말씀자체가 완벽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위의 성경 말씀에서 십사만 사천인을 상징으로 해석해야 할 어떤 필요와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성경은 더 이상 계시의 말씀에 다른 해석을 용인하지 않고 있다.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말씀 그대로 믿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이다.
아래의 말씀 중에 분명하지 않는 어떤 부분이 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 있는지 찾아보라.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4).
“…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1. 3).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8, 19).
연구2 - 말씀 스스로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음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4).
“내가 보니 보라 …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계 14:1).
가장 확실한 증거는 듣고 보는 것이며 확인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요한에게 살아 계신 인을 받을 사람의 수효가
십사만 사천인이 될 것이라고 들려주셨고(계7:4) 또한 보여주셨다.(계14:1) 그렇다면 믿을 만 하지 않는가?
요한이 듣고 본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확인을 하는 것이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계 7:4-9).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144,000명(12,000×12=144,000)이 확실하다.
더 이상 무슨 증거를 요구하겠는가? 그래도 불확실하다면 선지자의 글을 보자:
“유리 바닷가에는 144,000명이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서 있었다.” -초기, 16.
이 말씀을 보면 144,000명이 유리바닷가에 정방형의 모습으로 정렬해있는 모습이다.
정방형으로 정렬을 하기 위해서는 144,000명에서 한 명이라도 많거나 적은 수효라면
정방형의 정렬을 이룰 수가 없다는 사실은 운동장에서 정렬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보여 주셨고 듣게 하여 주셨고 두 번이나 같지 않는 방법으로 확인하여 증명 해 주셨다.
그런데도 144,000무리는 상징이라고 하겠는가?
연구3 - 성경은 더 이상의 논쟁을 거부함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3).
성경은 ‘새 노래를 부를 사람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없더라’고 말한다.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이라는 말은 한 명도 많거나 적지 않는 또 그럴 수가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이유로도 성경은 이 문제만큼은 논쟁하는 것을 거부하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이 말씀에 의 의를 제기하지 말라.
연구4 - 실제적 수효가 되어야함
이번에는 144,000명이 실제의 수효가 되어야 하는 타당성을 좀 다른 방법으로 증명해 보자.
성경에는 숫자가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뜻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3 - 삼위 하나님.
7 - 완전수, 하나님의 완전하심.
6 - 불완전.
666 - 짐승의 표.
12 - 교회를 상징하는 수(12사도 12지파, 12의 배수).
144,000명을 상징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이유 중에 하나는 계시록 7장에 나오는 12지파는
실제적인 지파가 아니요, 상징이기 때문에 144,000명도 상징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같은 사건을 다루는 일에 어떤 것은 상징으로 어떤 것은 실제적인 것으로 다룬다면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논리이다. 지극히 일반적인 해석이며 논리이다.
성경의 말씀은 영적인 것이기에 인간적인 논리가 아니라 성경적인 논리로, 영적으로 해석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이스라엘 12지파는 실제지파요 계시록7장에 나오는 12지파와 144,000명은
상징적인 지파 일뿐 실제가 아니다. 라고 모두는 생각한다. 그러나 재림신자들은 개념을 바꾸어서 생각해야 한다.
이스라엘 12지파가 비유요 상징이며 오늘날 재림성도들과 144,000명은 실제 적인 지파라고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야고보서 1장 1절을 보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야고보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 곧 교회에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구약은 예언이요 비유이며 신약은 성취요 실체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어린양은 상징이요 비유이며
신약의 예수님은 양의 실체요 비유의 주인공이시다. 그러므로 구약의 12지파가 상징이요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백성인 재림성도들이 실체적인 열두 지파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늘날 영적 12지파에서 구속의 열매들로 계수된 144,000명을 상징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는가?
잘못된 해석이다. 실체는 글자 그대로 실체요 성취이기에 가감하여 설명해서는 안 된다.
계시록 21장을 연구해보면 구속의 열매들인 144,000명은 하늘 새 예루살렘 도성의 설계도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되며 144,000명은 새 예루살렘 교회와 상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늘 새 예루살렘 도성은 일반적으로 교회를 상징하는 숫자인 12라는 숫자로 설계되었다.
새 예루살렘 도성과 144,000명을 비교해 보자(계 21장 참조).
12지파(12사도) - 열두 진주문, 열두 기초석
지파별 12,000명 - 12,000스타디온
144,000인 - 144규빗의 성곽 (천사의 척량임)
144,000인의 품성을 상징하는 12보석 - 실제적인 12보석으로 꾸밈.
144,000인의 품성의 기초인 믿음과 사랑(금) - 정금 거리.
모두가 보면 144,000명의 품성을 상징하는 보석과 정금으로 꾸며졌으며 그리고 열두지파가 기초가 되고 있으며
결국 12지파의 구속의 열매인 144,000명의 승리한 무리들을 영원토록 기념하도록 건축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건축된 새 예루살렘 교회에는 이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24장로가 새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가 될 것이며 지상에 있던 성소에서
레위 지파가 봉사하였던 것처럼 144,000명은 새 예루살렘 교회에서 봉사하는 레위 지파(집사)의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헤일 수 없는 허다한 무리는 새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되어 매 안식일마다
하나님 앞에 모두가 모여서 경배하게 될 것이다. 아, 이 얼마나 감격스런 장면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섬기는 종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그 수효를 정하실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교회는 교회에서 봉사할 장로와 집사들의 수효를 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기억할 일은 어떤 필요를 위하여 사용된 숫자나 무엇을 상징하기 위하여 사용된 숫자는 결코 변경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숫자가 바뀌면 뜻이 달라지고, 상징하는바 실체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12제자 중 가롯 유다의 결격 사유 때문에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바사바와 맛디아를(행1:23) 제비뽑아 그 중 맛디아를 택하여 12명을 채운 사실과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상징하기 위해 7(일곱)이 아닌 6(육)을 사용한다면 어찌 올바른 상징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144,000명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속에서 그분이 계획하시고 섭리하신 가운데 특별한 구속의 설계가 이 무리들의 수효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144,000명의 이름이 새 예루살렘성 기둥에 금 글씨로 새겨져 있다.
“‘이 성전은 일곱 개의 기둥이 떠 받치고 있었으며 일곱 개가 모두 매우 찬란한 진주가 박힌 투명한 금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거기서 본 놀라운 사물들을 다 묘사할 수 없다. 내가 하늘 가나안의 언어로 더욱 좋은 그 세상의 영광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묘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거기서 144,000명의 이름이 금 글씨로 석판들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초기, 19.
이 이름들이 상징으로 새겨졌을 뿐 실제적인 이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들의 이름을 지워 버리고자 하지 말자. 그 이름은 상징적인 이름이 아니요 실제적인 이름들이요
실제적으로 구속함을 받을 존재자들의 이름이다.
연구5 - 예언의 신의 확증
“생사간에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 사업을 마치시고 그들의 죄를 도말하셨다. 주님의 백성의 수효는 찼다.” -쟁투, 613-614.
“나는 천사들이 하늘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한 천사가 잉크 통(뿔로 만든)을 가지고 지구에서 돌아와
예수님께 자기의 일이 끝났음을 보고하고 성도들의 수가 차서 인치는 사업이 마쳤음을 보고했다.
그러자 나는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 앞에서 봉사하시던 예수께서 향로를 내던지시는 것을 보았다.” -초기, 279.
“예수님의 중보 사업이 끝난 후 그 두려운 시간에 성도들은 중보자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었다.
모든 상황은 결정되었고 모든 보석은 헤아려졌다.” -초기, 280.
이제 생각해보자. 144,000명이 실제의 수효가 아니요 헤일 수 없는 무리라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헤아리고 계셨으며 헤일 필요도 없는 허다한 무리들을 수가 차도록 기다리고 계셨는가?
주님께서 헤아리시고 수효를 세시며 그 수가 차도록 기다리신 것은 144,000무리들의 수효가 실제적인 수효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야곱의 환란동안 중보자 없이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하며 지킬 수 있음을 온 우주에 증거할 구속의 열매들이기에
그 수효가 차기를 그처럼 애타게 기다리신 것이다.
마침내 144,000명의 수효가 찰 때, 마지막으로 준비된 영혼이 인침을 받는 순간
천사는 지구로부터 돌아와 예수님에게 144,000명에게 인치는 사업이 마쳤음을 보고하였다.
구속 사업은 이제 모두 끝이 난 것이다. 법궤 앞에서 향로를 들고 봉사하시던 예수님은 향로를 내던지시고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고 선언을 하신다.
모든 것은 끝났다. 이제는 더 이상 죄인들을 위한 간구도 눈물도 흘릴 필요가 없다.
마지막 눈물은 흘려졌고 하늘 성소에는 죄인을 위한 중보자는 떠나시고 계시지 않는다.
죄인들에게 항상 호소하시던 성령도 세상에서 떠나시고 천사들도 더 이상 죄인들을 도울 일이 없어졌다.
144,000명의 수효는 찼고 구속의 열매는 모두 추수되었기 때문이다. 사단은 이것을 안다.
144,000명의 수효가 차는 날 자신의 운명은 끝이 나고 영원한 심판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
그러므로 이 진리가 나타나는 일은 사단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이요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끊임없이 이 진리를 무효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왔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치는 기별로 탄생될 144,000인들이 상징적인 존재자들이라고 결론짓게 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사단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재림교회 안에서는 여러가지 견해들이 난무하여 무엇이 참된 진리인지 분간할 수 없도록 되어 버렸다.
어떤 견해들은 일요일 교회들에서 주장하던 견해들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버젓이 재림교회 강단에서
전해지고 있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의 말씀은 매우 두려운 말씀이다:
“그는 ‘내가 나가서 속이는 영이 되어 내가 할 수 있다면 이들을 속이고, 비평하고, 저주하고, 거짓 것을 만드는 이가 되게 하리라’고 말한다.
기만과 거짓 증거의 죄가 큰 빛, 큰 증거를 받았던 어떤 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져서 그 교회는 주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제거할 것이요,
지극히 비이성적인 주장과 거짓된 추측과 거짓 이론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사단은 그들의 미련함을 비웃는데, 이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사단의 가증한 횃불에서 불을 붙인 거짓 예언의 횃불을 손에 들고 강단에 서게 될 것이다.” -목사, 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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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도 144,000인에 포함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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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00인은 상징적인 숫자 일뿐 실제적인 수효가 아니라는 교단적인 가르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부류의 사람들은 실제적인 수효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오랫동안 세 천사의 기별을 믿어온 연로한 분들 중에 개인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분들이 많다.
그것은 재림교회에서 과거에는 그렇게 가르치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은 자들 가운데도 144,000명에 포함되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어떤 이들은 크게 당황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진리이다.
성경과 예언의 신의 말씀으로 증거 할 수 있는 분명한 진리이며 또한 재림교회의 선구자들 모두가
그렇게 믿고 가르쳤던 옛 진리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펴고 연구해 보고자 한다.
연구1 - 계시록 7장 연구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치는 사업은 이미 시작됨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계 7:2-3).
요한은 계시 중에, 한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 바람을 붙들고 있는
땅 네 모퉁이의 천사들에게 인치는 사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천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인 치기 위해서 올라온 천사이다.
그러면 연구를 돕기 위하여 먼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 무엇이며 인치는 천사는 어떤 천사인지 다시 한번 상기해야 될 것 같다.
다음의 말씀을 보자:
“하나님의 율법을 대적하던 자들은 목사들로부터 가장 작은 자에 이르기까지 진리와 의무에 대하여 새로운 견해를 가진다.
그들은 넷째 계명의 안식일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 됨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쟁투, 640)
“나는 그 때 셋째 천사를 보았다. 나를 수행하는 천사가 말했다. 그의 사업과 사명은 두렵고 놀라운 것이다.
그는 곡식을 가라지에서 분리해서 인을 치고 묶어서 하늘 창고에 들이는 천사이다.
이 일에 온 마음과 주의력을 기울여야 한다.” (초기, 118)
이제 모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 은 안식일이요, ‘인 치는 천사’는 셋째 천사라는 사실에는 의문이 없을 줄로 믿는다.
그렇다면 좀더 전진하여 셋째 천사는 언제 하늘에서 내려왔으며 인치는 사업을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렇다. 1844년 10월 22일 셋째 천사는 이 땅에 내려왔다. 말씀을 보도록 하자.
“예수께서 성소의 봉사를 끝내시고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율법이 들어있는 법궤 앞에 서 계실 때 세 번째 기별을 가진 힘센 천사를 세상에 보내셨다.” (초기, 254)
1844년 10월 22일 예수님께서 성소 봉사를 끝내시고 지성소에 들어 가셔서 힘센 셋째 천사를 이 땅에 보내셨다.
그렇다면 인치는 사업은 1844년부터 시작된 것이 확실하지 않는가?
1849년 3월 24일 화잇 선지자는 인치는 사업이 이미 진행 중임을 말씀하셨다. 다음의 말씀을 보도록 하자.
“사단은 이 인치는 시기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현대진리에서 돌이켜 그들이 흔들리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계략을 다 쓰고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환난의 때에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을 덮어 씌울 덮개를 가지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진리편에 서서 마음을 순결하게 보존한 영혼에게 전능자의 보호막이 씌워질 것이다.
사단은 이것을 알고 할 수만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을 진리에서 떠나게 해서 흔들리게 하려고 온 힘을 기울여 일하고 있다. …
나는 사단이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혼란시키고 속이고 유혹하는 일을 바로 지금 곧 인치는 시기에 하는 것을 보았다.” (초기, 43-44)
몇 명이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인지는 이미 연구하였기에 또 다시 제시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144,000명에게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침이 주어진다는 사실만을 말해둔다.
1844년에 시작된 인치는 사업은 벌써 한 세기 반이 훨씬 더 지나갔다.
셋째 천사가 이 땅에 내려온 목적은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여 인을 쳐서 창고에 들이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인치는 사업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시작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인을 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144,000명은 계수되기 시작했으며
정확하게 144,000명에게만 인을 칠 것이다. 그렇다면 인침 받은 사람 중에서는 잠든 자들이 있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 선지자는 1844년 이후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잠든 영혼들 중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이 있었음을 계시로 보았다.
선지자의 글을 보도록 하자.
“지구상에는 90세를 넘는 사람들이 살아있다. … 하나님의 인은 저들 위에 있으며 저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자금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라는 수효 가운데 들어갈 것이다.” (7주석, 982)
“나는 그대에게 무슨 말로 위로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대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저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나는 그 소식을 믿을 수 없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혀 믿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지난 안식일 밤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말씀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그녀(하스팅부인)가 인치심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와 땅 위에 섰으며 그가 144,000인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2기별, 263)
셋째 천사는 분명 이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쳤다. 인을 쳤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유권을 주장함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 침을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온전히 닮은 자들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연적인 노쇠(老衰)로 주님께서 오시는 재림 때까지 생존하지 못하여 잠들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육체적인 죽음이 그의 이마에 쳐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무효화시키는가?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품성에 모순 되는 일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넷째 계명인 안식일이며 하나님과 그의 백성사이에 표징이 된다.
하나님의 율법은 무엇인가?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다.
그렇다면 넷째 계명인 안식일의 인을 이마에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품성이 마음에 새겨진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은 곧 하나님의 인인 것이다. 다음의 말씀을 보라.
“하나님의 법을 품성의 시금석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으로 제시하면서도 거룩한 계명들을 범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의 양심은 마비되고 매우 강퍅케 된다.” (2증언, 468)
품성은 죽음으로 무효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정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받은 인이 취소되어야 하는가? 그들의 죽음은 오히려 144,000인의 인침을 영원히 고정시켜 주는 것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고 죽은 영혼들이 144,000인의 특권을 잃어버려야 할 어떤 이유도 말씀 가운데서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성령께서는 다음과 같은 보증의 말씀을 주셨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계 14:13)
연구2 - 계시록 14장 연구에서
성령께서 인침받고 죽은자들을 보증하심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이 말씀을 하시기 전의 장면을 생각해보자. 요한이 방금 어린양과 144,000인들이 시온산에 서서 새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았는데, 144,000인들 외에는 배울 수 없는 구속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계 14:1-5 참조).
그리고 계시록 14장 6-12절을 보면, 이 백성은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로 탄생될 무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144,000명은 셋째 천사의 기별로 인침을 받았다. 그런 후에 요한은 하늘로서 들리는 음성을 듣는다.
누구의 음성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계1:1)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계 14:13) 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런 후에 또 다른 음성을 요한은 듣는다. 누구의 음성인가?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지금 하는 말을 기록하라고 명령 하셨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자금 이후(henceforth)란 이제부터라는 말이다. 그럼 언제부터 주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말인가?
조금 전에 요한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 온 땅에 전파되는 계시를 보았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계 14:9) 셋째 천사는 1844년부터
인치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자금 이후 곧 이제부터란 말씀은 1844년 이후부터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주 안에서 자든 자들이 복이 있다는 말인 것이다.
그러면 1844년 이후 셋째 천사의 기별을 듣고 죽은 자들이 누릴 축복이 무엇인가?
1843년에 주 안에서 죽은 자들보다 1844년 이후 셋째 천사의 기별을 듣고 죽은 자들에게 어떤 축복과 특권이 주어지는지 아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1844년 이후 셋째 천사의 기별을 듣고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복이 있는 이유는 144,000인들의 특권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잠시 후에 알게 될 것이다.
죽은 자들도 144,000인들의 특권을 누릴 것이 확실함을 성령께서는 보증하여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고 하셨다.
야곱의 환란 때에 생존하여 있는 144,000들이 야곱의 환란을 통과할 때 이들은 편안하게 무덤에서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쉰 후에,
일곱째 재앙이 시작될 때 무덤에서 부활(특별부활)하여 잠시 동안 환란을 통과한 후 144,000인의 특권을 누린다.
완전히 거듭나지 못한 마음에는 다음과 같은 불평을 할는지 모른다. 야곱의 환란을 통과한 사람과
무덤에서 쉬었던 사람들이 동일하게 144,000인의 특권을 누린 다면 불공평하지 않는가? 라고 항의할는지 모른다.
그것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 접어두고, 특별부활과 마지막 사건을 연구해 보도록 하겠다.
특별부활
특별부활은 글자 그대로 특별한 부활로서, 아직 의인들의 첫째 부활이 있기 전에, 그리고 아직 그리스도의 재강림이 있기 직전에 있을 부활이다.
이 부활에는 특별한 악인들, 곧 예수님을 찌른 자들이 그때에 부활할 것이며 그리고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자(인 받고 구원받은 자)들이 부활한다.
이제 주님의 재림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날 사건들을 순서대로 정리해 보자.
여섯째 재앙이 내리고 악인들에게 바야흐로 일곱째 재앙이 시작될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되었다’(계 16:17) 라는 음성을 발하신다.
그 때에 하늘에서는 100근 짜리 우박과 함께 이 세상이 존재한 이후 없었던 큰 지진이 일어난다. 이 때에 무덤이 열리고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던
특별한 사람들이 부활하는데 이 부활을 특별부활이라고 한다. 영감의 말씀을 보도록 하자.
“거기서 ‘되었다’(계 16:17)는 많은 물소리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 음성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킨다.
큰 지진이 일어난다.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계 16:18).
하늘은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같이 보인다.… 한 덩어리가 백근쯤 되는 큰 우박이 쏟아져 파괴하는 일을 하게 된다.
지상의 오만한 도시들은 낮아진다. 세상의 큰 인물들이 그들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그들의 재산을 허비하여 건축한 호화로운 건물들이 그들의 목전에서 무너져 내린다.
감옥의 벽들은 무너지고 믿음 때문에 속박되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해방된다.
무덤은 열리고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단 12:2)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사람들은 모두 영화롭게 된 몸으로 무덤에서 나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평화의 언약을 듣는다.
‘그를 찌른 자’(계 1:7)들, 그리스도의 죽음의 고통을 조소하고 조롱한 자들, 그리스도의 진리와 그분의 백성들을 몹시 핍박한 자들도 또한 일어나서
영광 중에 계신 그분을 쳐다보고 충성되고 온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을 보게 된다.“ (쟁투, 636-637)
특별부활에는 1844년 이후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자들만 부활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아직 첫째 부활에 일어날 의인들(허다한 무리들)은 무덤에서 잠자고 있다. 이 의인들은 예수님이 강림하신 후
그리스도의 음성에 의하여 부활한다. 그러므로 일곱째 재앙 시초에 특별부활에 일어난 무리와는 구별해야 한다.
특별부활에 일어난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었든 의인들은 일곱째 재앙 초기에 부활하여
이 땅에서 전개되는 엄청난 재앙을(1-6번째 재앙이 누적되어옴 계 16:10, 11 참조) 직면하게 된다.
특별부활에 일어난 의인들은 아직 불멸의 몸으로 변화된 것이 아니다 (불멸의 몸은 첫째 부활 때 성취됨. 살전 4:15-17, 고전 15:51-54 참조).
그러므로 이들은 환난을 피할 수 없으며 짧은 기간이지만, 생존하여 있던 144,000인들과 함께 환란을 통과하게 된다.
그러나 특별부활에 일어난 자들은 극히 짧은 기간 동안만 환난을 경험한 후 재림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당당하게 144,000인들의 특권을 누리는 자들이기에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는 기록을 하게 하셨고
성령께서도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불공평하지 않는가?
야곱의 환란을 통과한 사람과 무덤에서 쉬었던 사람들이 동일하게 144,000인의 특권을 누린다면
불공평하지 않는가? 라는 항의는 이기심과 삯꾼의 정신을 소유한 사람들에게서는 너무도 타당한 항의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항상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 55:8).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에서 포도원의 품꾼(마 20:1-11)을 다루시는 가운데서 우리들의 마음이 어떠해야 할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루 종일 햇빛 속에서 수고한 사람과 한 시간 동안만 일한 사람에게 모두 동일한 품삯을 지불하셨을 때, 하루종일 수고한 사람들이 항의하여 불평을 하였다.
그때의 주인의 대답은 무엇이었는가?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15)라고 반문하셨다.
한 시간 일한 자에게 하루 종일의 품삯을 준 것은 너무도 선한 일이 아닌가? 라는 말이다.
주인이 선한 일을 행함으로 불평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는 없을 것이다.
비록 특별부활에 일어난 사람들이 한 시간 동안만 야곱의 환란을 통과한 후, 144,000인의 특권을 누린다 할지라도 죽음을 보지 않고 생존하여
야곱의 환란을 모두 통과한 144,000인들 가운데는 한 명도 주인을 원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주인의 선하심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이들의 이마에는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인을 받음)으로 변화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어떤 일을 처리하심에 있어서 공의롭지 못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144,000인들을 다루시는 일에도 공의로우시다.
다만 우리들이 무지하여 성경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을 뿐이다.
자금 이후로 죽은 자들이 144,000인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이유를 성령께서 친히 설명을 하셨기 때문이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계 14:13)
그 이유란 무엇인가?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하셨는데, ‘이는’이라는 말은 곧 그 이유는 이라는 말이다.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라고 성령께서는 이유를 친히 설명하셨다.
그들은 비록 잠들어서 무덤 속에서 환란의 대부분을 통과하였지만 그들의 행위가, 다시 말해 그들의 품성이 144,000인들이 되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44,000인의 자격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의 품성이 변화된 것을 말한다.
십사만 사천인들의 자격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144,000인의 자격이 마치 야곱의 환란을 통과해야만 자격이 주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않아야만이 144,000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자격이 아니다.
이런 것들이 144,000인들의 자격이라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치는 사업은 1844년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야곱의 환란을 통과한 후에 인치는 사업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분명한 것은 144,000인들의 유일의 자격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이다.
곧 품성이 완전하신 그리스도와 품성이 같음으로서만이 144,000인들의 자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인침을 받은 자들은 죽은 자들이나 살아 있는 자들이나
똑같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품성이 변화된 사람들이기에 144,000인의 특권을 함께 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성령께서 보증하셨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인침을 받은 자들 가운데 자연적인 노쇠(老衰)로
비록 잠들었다 하더라도, 죽음을 맛보지 않는 144,000인들과 똑같은 특권을 가질 것을 보증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로 그들은 살아 생존했던 자들과 꼭 같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야곱의 환란을 당할 일은 144,000인들이 경험해야할 필연적인 경험이기는 하나 자격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죽은 자들이 144,000인에 참여하는 것에 대하여 원망하거나 불평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144,000인들을 다루시는 일에 결코 불공평하게 처리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인침을 받은 자를 죽음을 맛보았다는 이유로 144,000인의 특권에서 제외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불공평한 일이 될 것이며, 만약 그렇다면 인침 받고 주 안에서 잠든 자들은 이렇게 항의할 것이 아닌가?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율법이 우리들의 생애에
원칙이 되었을 때 성령께서는 저희들의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쳐주셨습니다.
저희들은 짐승의 표가 이 땅에 나오고 짐승의 우상이 세워질 때 죽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고수하며 충성을 다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또한 야곱의 환란을 위하여 준비하였고 늦은비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참으로 저희들은 주님께서 속히 오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의 수한(壽限)이 다할 때 주님께서는 저희들을 믿음 가운데 잠재우셨습니다.
우리는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잠든 자들은 복이 있도다’ 라는 약속을 믿고 144,000인의 소망 중에 잠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의 믿음의 실상인 144,000인들의 특권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라고 항변할 것이다.
연구3 - 화잇 선지자의 첫 계시연구
확실한 실증
초기문집 15페이지 화잇 선지자의 첫 계시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곧 우리는 많은 물소리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 음성은 예수께서 오시는 날과 시간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그 수가 십사만 사천명이나 되는 살아 있는 성도들은 그 음성을 알아듣고 그 의미를 깨달았으나 악인들은 그것이 뇌성과 지진이라고 생각하였다.” (초기, 15)
화잇 선지자의 첫 계시에서 주어진 이 말씀을 깊이 연구해보면,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자들이 144,000인들에 포함되어야 하는 확실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계시록 16장16-17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여섯째 재앙 이후,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이 발하여 짐으로 일곱째 재앙이 시작된다.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계 16:17-18)
이와 같이 일곱째 재앙을 시작으로 하여 펼쳐지는 천재지변과 사건들을 순서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되었다”는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으로 일곱째 재앙이 시작됨 “하늘의 험악한 광경 가운데서 형언할 수 없는 영광이 나타나는 한 공간이 나타난다.
거기서 ‘되었다’(계 16:17)는 많은 물소리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쟁투, 636)
2. 100근짜리 우박이 떨어지고 지진이 일어남
“한 덩어리가 백근쯤 되는 큰 우박이 쏟아져 파괴하는 일을 하게 된다.” (쟁투, 637)
3. 특별부활이 있음
“무덤은 열리고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단 12:2)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사람들은 모두 영화롭게 된 몸으로 무덤에서 나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평화의 언약을 듣는다.” (쟁투, 637)
4. 특별부활에 일어난 자들이 칠 재앙을 보게 될 것임
“짙은 구름은 여전히 하늘을 덮고 있다. 그러나 태양은 때때로 구름을 뚫고 마치 원한에 찬 여호와의 눈처럼
나타난다. 무서운 섬광이 하늘에서 흘러나와 불꽃으로 된 보(褓)처럼 지구를 둘러싼다.” (쟁투, 637-638)
(넷째 재앙-태양이 뜨거움; 다섯째 재앙-흑암)
5. 숨겨졌던 돌비(십계명)가 심판의 기준으로 공중에 나타남
“그 때에 공중에는 접쳐진 두 돌비를 쥔 손이 나타난다.… 시내산에서 불꽃과 우레 가운데 생애의 지도 원리로 선포된 거룩한 율법,
곧 하나님의 의는 이제 심판의 표준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그 손이 돌비를 펴자 불과 같은 글자로 기록된 십계명이 나타난다.
그 어구들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다.” (쟁투, 639)
6. 안식일이 ‘하나님의 살아계신 인’으로 선포됨
“그들은 넷째 계명의 안식일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 됨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쟁투, 640)
7. 예수님이 오시는 재림의 날과 시간이 선포됨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짜와 시간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언약이 주어진다.” (쟁투, 640; 초기문집 15)
8. 예수님의 재림
“곧 사람의 손바닥 반만한 작은 검은 구름이 동쪽에서 나타난다.” (쟁투, 640)
“만왕의 왕께서는 불꽃에 싸여 구름을 타고 내려오신다.
주님 앞에서 하늘은 두루마리처럼 함께 말리고 땅은 진동한다.” (쟁투, 641)
9. 첫째부활 (아담이후 잠자던 의인들)
“주님께서는 의인들의 무덤을 보시고 당신의 손을 하늘을 향하여 드시고, ‘깨어라, 깨어라, 깨어라,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여, 일어나라!’고 외치신다.
이 땅의 어느 곳에서나 죽은 자들이 그 음성을 듣게 될 것이며, 그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날 것이다.” (쟁투, 644)
“한 때 죄로 더러워져서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고 죽을 수밖에 없이 되었던 썩을 몸이 완전하고,
아름답고, 죽지 아니할 몸으로 변한다. 모든 흠과 결함은 무덤 속에 버려진다.” (쟁투, 645)
“살아남은 의인들은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된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그들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였다.
그들은 이제 죽지 않을 몸으로 바뀌어져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 (쟁투, 645) (주: 144,000인들이 이때에 불멸의 몸이 됨).
특별부활에 일어난 성도들의 여정
일곱째 재앙 이후 펼쳐지는 사건은 무서운 재앙(1-7번째 재앙이 누적되어 있음 계 16:10, 11 참조)들이 누적된 가운데 장엄하게 그리고 순서적으로 일어난다.
이제 생각해 보자.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자들이 특별부활에 일어났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의 광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가 섞이지 않고 무섭게 진행되고 있는 칠 재앙들의 누적된 모습을 보게 된다.
종기, 흑암, 태양의 권세, 우박, 지진 등 천재지변의 혼란 중에 그들도 환란을 면할 길이 없다
(아직 불멸의 몸으로 변화된 것이 아님). 죄를 억제하시는 성령의 임재가 떠나버려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악인들의 모습을 그들은 보게 될 것이다.
반면에 죽음을 보지 않고 오랜 시일 동안 야곱의 환란을 통과해온 생존하여 있는 144,000인들과 그들은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될 것이며 그들은 연합되어 함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동행하게 된다.
(144,000인들은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는 관계로 모두가 한 장소에 연합되는 것은 아님)
“예수께서 오시는 날과 시간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그 수가 십사만 사천명이나 되는 살아 있는 성도들은
그 음성을 알아듣고 그 의미를 깨달았으나 악인들은 그것이 뇌성과 지진이라고 생각하였다. …
십사만 사천명은 모두 다 인을 받았으며 완전히 연합되어 있었다.” (초기, 15)
이때에 이 지구상에는 네 무리의 사람들이 생존하여 있을 것이다.
1.죽음을 맛보지 않은 의인들
2.특별부활에 일어난 의인들
3.죽음을 맛보지 않은 악인들
4.특별부활에 일어난 악인들
이런 상황 가운데 하늘에서는 두 돌비가 나타나고 넷째 계명이 인으로 선포되며 많은 물소리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예수님이 오시는 날과 시간을 선포하신다.
그러나 이 음성은 악인들에게는 천둥과 지진 소리로 들리게 되며 144,000인들에게만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과 시간을 알려주는 음성으로 알아듣는다.
“그 수가 십사만 사천명이나 되는 살아 있는 성도들은 그 음성을 알아듣고 그 의미를 깨달았으나 악인들은 그것이 뇌성과 지진이라고 생각하였다.” (초기, 15)
이때에는 지상에 생존하여 있든 네 무리들은 이제 두 무리로 구분이 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는 무리와 알아듣지 못하는 무리로 구분이 된다. 이 두 무리 밖에는 지상에 존재하는 자들이 더 이상 없다.
재림의 날과 시간을 알아듣는 무리 ---- 144,000인
재림의 날과 시간을 알아듣지 못하는 무리 --- 악인
이제는 하나의 가정을 실례로 들어서 상황을 설명해 보겠다.
화잇 선지자는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주 안에서 잠들었으니 분명 특별부활에 부활할 것을 우리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선지자 본인도 그런 소망 가운데 잠드셨기 때문이다.
“제가 주님께서 강림하시는 그 날까지 살게 될는지 모르며 비록 그 때까지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저는 ‘지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계 14:13)는 말씀이
저에 대하여 보증의 말씀이 될 것을 믿습니다.” (1기별, 55-56)
화잇 선지자를 비롯한 특별부활에 일어난 많은 재림 선구자들이 예수님이 오시는 날과 시간을 선포할 때
알아듣지 못할 것인가? 만약 알아듣지 못한다면 악인들이다. 알아듣는다면 이들은 분명 144,000인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지상에는 144,000명과 악인 두 무리밖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헤일 수 없는 의인들은
아직 무덤에 잠자고 있다. 독자들은 화잇선지자와 재림 선구자들을 악인들로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이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로 인침을 받았으나 잠들었고 그러나 특별부활에 일어나셨다.
이들이 144,000인들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생각은 상상으로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잠깐동안 환난을 통과한 후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 살아있던 수억의 악인들이 천천만만의 천사들과 함께 광휘 찬란하게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압도되어 죽어갈 때 이들은 죽지 않고 살아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분명 144,000인들은 죽지 않고 살아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무덤에서 일어날 때, 이미 이 땅에 오셔서 영광 중에 계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뵈올 첫째 부활에 일어날 헤일 수 없는 무리들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144,000인들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죽지 않고 살아있을 것은 이들은 이미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생애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생소하지 않을 것이며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사 25:9)
악인들이 산과 굴속을 찾아 그리스도의 얼굴을 피할 때, 144,000인들은 숨어있던 굴속으로부터 나와
그분을 영광 중에 맞이할 것이다. 재림성도들이여, 여러분은 지성소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가?
믿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승리의 생애를 살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 날에 살아서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며 그 날에 하나님의 영광은 즐거움이 될 것이다.
연구4 - 계시록 3장 연구에서
빌라델비아 시대 교회의 남은 무리들 중 어떤 이들은 144,000인에 들어감
대체적으로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를 1833년에서 1844년까지의 시대를 일컬어 말한다.
이 시대의 남은 무리들 중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에게는 144,000인들의 특권이
약속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남은 무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셨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 3:12)
이들에게 주어진 약속을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약속들은 144,000인들의 특권과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이 성전은 일곱 개의 기둥이 떠 받치고 있었으며 일곱 개가 모두 매우 찬란한 진주가 박힌 투명한 금으로
되어 있었다. … 나는 거기서 144,000명의 이름이 금 글씨로 석판들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초기, 19)
“드디어 우리가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려고 할 때에 예수께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십만 사천명만이 이 곳으로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모두 ‘할렐루야’ 라고 함성을 올렸다.” (초기, 19)
둘째: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계 14:1)
“그들의 이마에는 하나님이라는 글자 … 새겨져 있었다.” (초기, 15)
셋째: 하나님의 성 곧 …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십사만 사천명은 모두 다 인을 받았으며 완전히 연합되어 있었다. 그들의 이마에는 하나님이라는 글자와
새 예루살렘이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었으며 예수님의 새 이름이 들어 있는 영광스러운 별도 새겨져 있었다.”
(초기, 15)
넷째: 나의(예수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계 14:1)
“십사만 사천명은 모두 다 인을 받았으며 완전히 연합되어 있었다. 그들의 이마에는 하나님이라는 글자와
새 예루살렘이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었으며 예수님의 새 이름이 들어 있는 영광스러운 별도 새겨져 있었다.”
(초기, 15)
144,000인의 특권을 누릴 빌라델비아 시대의 남은 무리들
빌라델비아 교회의 남은 무리로서 144,000인들의 특권을 누릴 자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자.
이들은 1844년 당시 첫째 천사와 둘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한 자들 중에서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무리들일 것이다. 이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통하여 인침을 받았으나 모두가 잠들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는 소망 중에 무덤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다. 화잇 선지자를 위시하여
그의 남편과 그리고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이 될 것이다. 이들은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의 남은 무리들로서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은 자들인 것이다.
화잇 선지자의 계시 중에서 인침을 받고 죽은 ‘하스팅 부인’ 과 역시 인침을 받은 당시 90세 노령의 백성들이 여기에 해당 될 것이다.
“지구상에는 90세를 넘는 사람들이 살아있다. … 하나님의 인은 저들 위에 있으며 저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자금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라는 수효 가운데 들어 갈 것이다.” (7주석, 982)
“나는 그녀(하스팅부인)가 인치심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와 땅 위에 섰으며 그가 144, 000인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2기별, 263)
“제가 주님께서 강림하시는 그 날까지 살게 될는지 모르며 비록 그 때까지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저는 ‘지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계 14:13)는 말씀이 저에 대하여 보증의 말씀이 될 것을 믿습니다.” (1기별, 55-56)
우리는 똑같은 시기의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었던 윌리엄 밀러를 생각할 수 있다.
그는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는 일에 실패하였으므로, 144,000인의 특권을 누릴 수 없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의인들의 부활인 첫째 부활에 일어날 것이다.
“나는 윌리엄 밀러가 바야흐로 하늘 가나안에 들어가려 할 때 진리에 반대되는 감화를 끼침으로 과오를 범한 것을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과오를 범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이 책임이 돌려져야 한다. 천사들은 이 귀한 하나님의 종의 시체를 지키고 있다.
그는 마지막 나팔 소리를 듣고 무덤에서 나올 것이다.” (초기, 258)
윌리엄 밀러는 특별부활에 일어나지 않고 첫째 부활에 일어난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활하는 특별부활이 아닌,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살전 4:16) 이 나팔 소리를 듣고 부활 할 것이다.
특별부활 -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으로 부활함 (계 16:17 참조)
“거기서 ‘되었다’(계 16:17)는 많은 물소리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쟁투, 636)
“무덤은 열리고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단 12:2)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사람들은 모두 영화롭게 된 몸으로 무덤에서 나와” (쟁투, 637)
“나는 그녀(하스팅 부인)가 인치심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와 땅 위에 섰으며 그가 144,000인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2기별, 263)
첫째 부활 - 그리스도의 음성으로 부활함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이 잠자는 성도들을 불러일으킬 때 지구는 크게 흔들렸다.” (초기, 287)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5-17)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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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이야 스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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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이야 스미스 목사는 오랫동안 리뷰 앤드 헤랄드지 편집장으로 계셨으며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정통한 분이셨다. 특히 화잇 선지자의 총애를 받은 분으로 신망이 두터웠다.
그의 십사만 사천인의 견해는 성경과 예언의 신에 의하여 검증해 볼 때 그의 견해에 잘못이 없음을 알게 된다.
1897년 8월 10일 리뷰 앤드 헤랄드지에 기고한 우라이야 스미스 목사님의 144,000인 연구 발표문을 소개한다.
(소제목들은 편의상 편집자에 의하여 붙여졌습니다)
십사만 사천인의 연구
“계시록 7장의 144000인에 대하여 나는 최근에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어느 시대에 나타날 것인가? 그 수효는 문자 그대로 144000인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특별한 계층에 해당하는 많은 무리를 상징하는 수효인가?
144,000인의 수효는 계시록 7장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으며 또한 이들이 탄생되는 환경을 올바르게 적용 할 수 있는 명확한 지침을 제공해 준다.
이들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인 맞는 무리들이며 땅 사방에서 바람이 불려고 할 즈음 인을 받는다.(계7:2, 3) …
계시록 7장 1-8절의 장면은 마지막 시대에 해당하며 지상의 모든 사업들을 마치기 위한 준비 사업이다.
그러므로 144,000인은 마지막 세대인 이 시대에 ‘우리 하나님의 종들’ 중에서 발견되어져야 하며
그들에게 인치는 사업은 마지막 종교 운동이며 기독교 시대의 마지막 기독교 운동이다.
그러나 인 맞는 자들이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나오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즉시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이스라엘의 12지파는 현재 존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12지파의 계보가
구별되어 있던 과거의 어느 시절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
그러나 이스라엘은 육신에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에 국한되지 않고 진정한 이스라엘은 내적인 유대인이며(롬 9:6-8)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여져서
그 진액을 함께 받는 돌감람나무 가지이며 영적 이스라엘에 속하는 이방인(엡 2:12, 19)이라는 사실로 증명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약속에 의하여 유업을 이을 자가 된다(갈 3:29).
그래서 야고보는 주의 오심이 가까운 때(계 7:1-8의 시기)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한 것이다. …”
한정되어진 수
“144,000인의 수효는 개개인들로 구성된 한정된 수효이며 이것은 결코 불명확한 수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계시록 7장 9절에서 헤일 수 없는 또 다른 무리가 소개되고 있으며 이 무리는 어떤 사람도 헤일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144,000인들을 이와 같이 불명확한 수를 표상 하는 것으로 의도 했다면 요한은 계시록 7장 4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무리가 있는데 아무도 헤일 수 없더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쉽게 셀 수 있고 계산될 수 있는 각 지파로부터 12000명씩 도합 144,000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
144,000인들은 죽음을 통과하지 않는 자들인가?
“마지막으로 144,000인들은 죽음을 통과하지 않는 자들만 참여 하게 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언의 조건은 현제 무덤에 있는 자들이 144,000인에 포함 되어야할 필요를 말한다.
계시록 14장의 셋째 천사의 기별은 계시록7장의 인치는 기별이다.
장이 다르고 예언이 제시되는 환경은 다르다 할지라도 이것은 두 기별이 아니고 동일한 기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셋째천사의 기별은 144000인들을 인을 받도록 준비 시킬 것이다.
이것을 계시록 7장에서는 ‘그들의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치는’ 것으로 불리어진다.
하나님의 인은 안식일이므로 여기에 나타난 사업은 오늘날의 안식일 개혁운동에 관련된 기별이다.
이 운동으로 진실한 신앙경험을 하고 죽은 자들은 모두 이 기별로 인 맞은 자들의 수효에 포함되어야 한다.
현재는 무덤에 있으나 죄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가납을 받은 그들의 모든 신앙이 이 기별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이 경험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그 기별로 인침을 받지 못하였는가? 그렇지 않다. 이 기별은 144,000명에게만 인을 친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144,000인 무리에 계산되어 져야 한다. …”
다른 길은 없다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지막 신앙 경험에 의하여 그 무리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하늘로부터 난 소리가 요한에게 다음과 같이 기록 하라고 명령한 말씀이 말해 주고 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비록 그들은 살아 있는 자들이 모든 수고와 시련과 투쟁을 통과하는 동안 무덤 속에 조용히 쉬고 있었으나 살아서 시련을 통과했던 것처럼
144,000무리에 결국 포함되어 지는 것이다. 셋째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자들이 144,000에 계수 될 수 없다는 자들은 계 14:13절의 말씀과
계 7:1-8절의 말씀과의 연관성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특별부활에 참여한 의인들이 포함됨
“144,000인은 땅에서 구속함을 얻고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기 때문에 결코 죽은 자들은 참여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죽음을 맛보지 않은 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자금이후로 셋째천사의 기별을 믿고 주안에서 잠든 자들도 참여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라고 질문할 것이다. 대답은 이렇다.
단 12:2절과 계 1:7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한정된 의인과 악인이 부활하는 특별 부활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특별 부활에서 의인으로 일어나는 자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었기 때문에 144,000에 속한 자들이며 수욕과 부끄러움 가운데 일어날 악인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가담한 자들이거나 혹은 다른 시대에 서라도 하나님의 사업에 반대하는 일에 두각을 드러낸 자들이다.
성경에는 이런 자들의 특별부활에 대하여 확실 하고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 예언이 성취되는 유일한 지점은 계16:17에 언급된 때이다. 이것은 일곱째 재앙이 시작될 때이며
이때에 하늘 성소로부터 보좌에서 큰 소리로 “되었다” 하는 음성이 들린다. 이 소리는 천지를 진동 시킨다.
그러나 이 음성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을 알려준다.(렘 25:30,욜 3:16,히 12:26, 28)
이 때에 관하여서 각 시대의 대쟁투 636-637쪽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한다:
‘그 음성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킨다. 큰 지진이 일어난다. … 무덤이 열리고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다.(단12:2)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자들이 영화롭게 되어서 무덤에서 나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자에게 주시는 평화의 언약을 듣는다.
“그를 찌른 자”(계 1:7)들, 그리스도의 죽음의 고통을 조소하고 조롱한 자들, 그리스도의 진리와 그분의 백성들을 몹시 핍박한 자들도
또한 일어나서 영광 중에 계신 그분을 쳐다보고 충성되고 온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을 보게 된다.’”
평화의 언약을 같이 듣는다
“여기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자’들은 누구인가? 이 마지막 시대에 안식일 회복운동에 참여했던 자들임에 분명하며 이 사업을 하다가
죽은 자들은 여전히 살아있는 무리중의 한 사람으로 하나님께서는 간주하고 계시는 것 같다. 왜냐하면 평화의 언약을 그들에게 말할 때에 그 때에 무덤 속에
잠자던 사람들이 살아있는 자들과 같이 평화의 언약을 듣기 위하여 특별부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광의 몸으로 부활 한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사람들도 불멸의 몸으로 변화되지 않았다.
이것은 각 시대의 대쟁투 645쪽의 다음의 말씀으로 알 수 있다:
‘살아남은 의인들은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된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그들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였다.
그들은 이제 죽지 않을 몸으로 바뀌어져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
살아 있는 자들과 함께 평화의 언약을 듣기 위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특별부활에 일어난 자들은 그 당시에는
영화롭게 되어 일어나며 나머지 살아있던 자들이 불멸의 몸으로 변화될 때 역시 함께 불멸의 몸이 된다.
자, 이 부활한 자들을 보라 . 그들은 주님이 나타나시기 조금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난다.
그들은 단지 불멸의 몸이 될 수 있는 수준으로 일어난다. 그들은 살아있는 성도들의 일부를 이루어
살아있는 성도들과 같은 입장을 취하여 영화롭게 되나 불멸의 몸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은 적이 없는 성도들과 같은 상태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일어난다. 그 후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어 살아있는 성도들과 함께 불멸의 몸이 되어 공중에서 주를 맞이하기 위하여 들림을 받는다.
이와 같이 이들은 전혀 무덤에 들어간 일이 없는 자들과 같이 ‘땅에서 구속되고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는다.”
선구자들을 생각함
이와 관련하여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든 선구자들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줄로 믿는다.
제임스 화잇 장로, 제이 앤 앤드류스 장로, 죠셉 베이츠 장로와 같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이 사업의 초창기를 이끌어 왔고 셋째 천사의 기별과 함께 생사를 같이 했으며
그들은 심혈을 모두 기울여 144,000인들의 무리들에 참여 하도록 영혼들을 불러내려고 하였다.
그들은 이제 이 복된 소망을 가지고 무덤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잠시 후에 이 복된 자리에서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고 생각하여 보라.
이런 생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고 하면,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는 자들이 아니라 도리어 신자들이 날 벼락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환란을 경험해야 하는가?
이 무리들은 큰 환란에서 나와(계 7:4)야 하기 때문에 이 기별을 믿고 죽은 자들은 144,000인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고 말할는지 모른다.
그런 결론을 내리려면 좀더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일곱째 재앙이 시작될 무렵 그들은 특별부활에 무덤에서 부활하므로 그들은 일곱가지 모든 재앙을 주목 하게 된다.
어떤 성경 구절로부터 재앙의 기간은 1년이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
재앙들은 누적될 것이다. 첫째 재앙은 둘째 재앙이 내릴 때 끝나지 않으며 멈추질 않는다.
둘째 재앙은 첫째 재앙에 무서움을 증가시켜 주며 셋째재앙은 첫째와 둘째 재앙에
무서움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며(계 16:11-12 편집자주) 그리하여 일곱째 재앙에까지 이른다.
그러므로 일곱째 재앙에서는 모든 재앙들이 그 절정에 달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음성으로 특별부활에 부활한 자들도 죽음을 통과하지 않는 자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일곱째 재앙 가운데 누적된 모든 재앙을 보고 들을 것이며 통과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여섯 재앙의 환란을 통과 하지는 않았으나 “큰 환란에서 나왔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144,000인들은 그리스도의 재강림이 있기 전 모두는 연합될 것이며 셋째 천사의 기별로 구원받은 모든 자들이 된다. …
모두는 마침내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그분의 정부의 내각으로 구성되는 특권을 받으며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 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며’
(계 14:4) 항상 그의 앞에서 기뻐하며 그의 다함없는 은혜를 누릴 것이다.(계 7:15,17)”
이상의 말씀은 1897년 아직 화잇 선지자께서 건재하여 계실 때 리뷰 앤드 헤랄드지에 기고한 말씀이셨다.
이 말씀 중 어디에서 모순을 찾을 수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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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 라포보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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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 라포보로우 목사는 재림교회가 탄생시킨 최초의 목사로서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예언에 대하여 정통한 분으로서 그분은 화잇 부인의 공개적인 계시를 30여 차례 이상 목격하심으로 그 누구보다도 화잇 부인의 선지성과 예언들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과 지식을 소유하셨던 분이셨다.
특히 셋째 천사의 기별인 인치는 사업에 대하여 관심과 144,000인에 대한 예언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1894년 인치는 기별에 관한 “새빛” 이라는 이론이 교회 가운데 문제를 일으킬 때에 라포보로우 목사는 단호히 인치는 기별의 새 빛 을 말씀으로 잘못을 지적 하였으며
1916년에 “인치는 기별에 관한 질문들“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여 자신의 확고한 믿음과 144,000의 예언을 밝혔다.
그러면 1894년 인치는 기별에 관한 “새 빛” 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소개 한다.
어떤 사람들이 시기를 정하여 1894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며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주장하며
144,000인은 죽은 자들은 포함되지 않으며 살아있는 자들 가운데서 만이 구성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화잇 선지자도 이 기별을 옹호 하셨다는 말을 퍼트린 것이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소문은 생각보다 넓게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잘못된 사상들을 가지게 하였고 지금도 이 사상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J. N. 라포보로우 목사의 “인치는 기별에 관한 질문들” 이라는 소책자에는 세 가지의 질문들을 다루고 있다.
첫째 : 재림성도들은 언제 인치는 기별에 대한 빛을 받았는가?
둘째 : 인치는 기별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셋째 : 1848년 이래 이 기별을 믿고 잠든 백성들 중에 144000명에 포함 될 자가 있는가?
세 질문 중에서 세번째 질문을 간략하게 요점만을 소개하려고 한다.
셋째 질문
“1848년 이후 기별을 받고 죽은 자들이 144,000인에 계수 될 것인가.
새 빛을 받았노라고 주장 하는 자들은 144,000인들은 예수님 재림 때 까지 살아 있는 자들 외에는 아무도 그 수효에 계수 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로 요한계시록 14장 3-4절에 말씀으로 ‘사람 가운데 구속함을 받아’ 그리고 ‘땅으로부터’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 했다.
그러나 다니엘 12장을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바로 전 ‘환란의 때’에 부분부활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12장 1-2절 인용)자들 가운데 살아 있을 것이다.
만일 1848 - 1850년에 인침을 받았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들은 특별부활에 일어나 144,000인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을 기대 할 수 있다.
이 부활에 대하여 초기문집 초판의 영적 선물 292페이지를 읽어 보도록 하자. …” -인치는 기별에 관한 질문들 12.
“만일 아직도 특별 부활에 일어난 안식일 준수 자들이 144,000인에 포함된다는 사실에 대하여 의심이 있다면
1909년에 화잇 자매께서 주신 다음의 대답을 고려해 보라.
1909년 대총회에서 어윈(Irwin)목사는 (대총회장 역임) 속기사를 대동하고 화잇 부인을 면담하였다.
어윈(Irwin) 목사는 그녀에게 약간의 질문을 하고자 하였으며 질문과 답변을 정확하게 기록하도록 하였다.
다음은 그 질문중 하나이다.
‘이 기별을 믿고 잠든 자들이 144,000인 가운데 속하게 될 것입니까?’ 라고 질문하자,
화잇 부인은 ‘오 그렇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죽은 자들은 144,000인 가운데 속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하여 의심이 없습니다.’ 라고 답변 하였다.
이것은 질문과 답변은 그대로 기록한 것이며 어윈(Irwin)목사가 나에게(라포보로우 역자주)
그의 속기사의 기록에서 복사하도록 허락해준 내용이다.” -인치는 기별에 관한 질문들 17.
왜 이와 같은 선구자들의 진실 된 기록을 불신할 것이며 확실한 진리를 외면하고 다른 견해들을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
그 외 재림 선구자들의 144,000인 견해들을 간략하게 보도록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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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셉 베이츠 및 그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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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14장 6-13절에 주어진 재림기별을 갖고 있으며 행하며 그 가운데 참여하고 있는 모든 재림신도들은 현재 하나님과의 언약을 사랑하고 지킬 것이다.
특히 이 언약 가운데 있는 거룩한 안식일을 사랑하여 지킬 것이며 이들은 지금 인침 받을 144,000인의 한 무리이기도 하다.
다른 한 무리는 재림 교리들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나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열심인 자들이며,
그들은 이 언약과 안식일을 그들이 듣고 가르침을 받자마자 곧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이들은 144000인을 구성 하게 될 것이며 현재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며 이 인침은 시련의 때를 통하여 증거 될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 61, 62.
제임스 화잇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사람들은 144,000인의 한 부분이며 이 사람들을 제외하고 144,000인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부족한 숫자를 채우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바로 직전에 불멸의 생명을 얻기 위하여 부활하며 그리스도께서 재림 하실 때에 불멸의 몸을 입게 된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0년 9월 23일.
W. C. 화잇
W. C. 화잇의 증언 (화잇 부인의 아들로서 어머니의 믿음을 증언함. 편집자주)
“이제 한 질문이 있다. ‘화잇 부인은 1844년 이후 그 기별 가운데서 죽은,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 하고 말한 자들이 144,000인의 일원이 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까?
나의 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들에게 이것이 화잇 부인이 믿고 가르치셨던 것임을 확실히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여러 차례 나는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확실히 들었고, 나는 화잇 부인의 자서전 237페이지에 언급한 헤스팅 형제에게 보내는 편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그녀는 최근에 죽은 그(헤스팅)의 아내가 144000인이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네바다 주 레노에 있는 한 형제로부터 받은 편지 가운데 참고가 될 사항이 있습니다.
라포보로우 장로의 책 29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화잇 부인께서 말씀 하시기를 ‘믿음 안에서 잠든 자들은 144,000인 가운데 있게 될 것이며 나는 이 사실에 대하여 의심이 없다’ 고 말씀하신 기록이 있습니다.
“내형제들이여 나는 이 사실이 그녀의 일생의 봉사 생애를 통하여 그녀의 저술에서와 말씀하신 것들과
가르침에 있어서 완전히 일치하고 있음을 증거 합니다.”-W. C. 화잇 편지. 1929년 4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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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00 인에 대하여는 침묵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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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재림 선구자들의 견해들은 화잇 부인의 계시에 근거하여 계시록 7장과 14장의 말씀을 연구하였고 그들의 견해에는 조금도 불협화음이 없었다.
이와 같은 확실한 진리가 제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기를 정하는 광신자들에 의하여 144000인의 교리가 혼란을 가져 왔다.
뿐만 아니라 144000진리에 관하여 말씀에 확실한 근거도 없이 추측과 상상을 통하여 생각할 수 있는 여러가지 이론과 견해들이 교회 안에 편만 하였다.
실례를 들면,
- 여자와 아이들은 144000인에 들어 갈 수 없다.
- 죽은 자들은 참여 하지 못한다.
- 다른 교회에서 개종한 사람은 될 수없고 순수한 재림교인 이어야만 한다.
- 결혼하지 않는 독신 남자들이어야 한다(계14:4).
- 저들은 실제적인 유대인들로 구성된다.
- 미국 사람들로만 구성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허탄한 이야기들이 난무할 때에 화잇 부인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웅대하고 고상하며 고결케 하는 진리를 주셔서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보물 창고에 언제나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셨건만
교회 안에 허탄한 이야기들과 가설적인 이론들을 가르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이 이론 혹은 저 이론을 선택하며 저들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하여 알고 싶은 호기심을 갖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일이 아니다.
그분의 백성들이 상상의 힘을 빌어야 하고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들을 증거 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계획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십사만 사천 인에 속하게 될 것인가 하는 등의 영적으로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문제들을 가지고 신자들이 논쟁을 벌이게 되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잠시 후에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하나님께서 그대들과 그대들의 자녀를 위하여
주신 진리를 깊이 음미하고 연구하라. 영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기 위하여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가려뽑은 기별 1권, 174.
그런데 오늘날 이 말씀은 잘못 적용되어 마치 144,000인의 확실한 진리조차 연구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말씀을 전혀 잘못 적용한데서 비롯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 “십사만 사천인”, “셋째 천사의 기별” 등은 모두 같은 기별이요, 진리이다.
이 사업으로 세상은 끝이 이르게 될 것이다. 이 진리는 깊이 음미하고 연구해야 할 진리이며 재림성도들에게는 힘 있는 영적 양식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144,000인 가운데 들어가도록 힘써 노력하자”
-리뷰 앤드 헤랄드, 1905년 3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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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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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 계시록 7장 2절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과 “성령의 인”은 같은 것이 아닌가?
답변 : 성경에서는 우리가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구원의 보증으로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인을 치는 보증의 인을 말씀하고 있다.
다음의 성경절들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 1:13).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4:30).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딤후 2:19).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성령의 인과는 다른 점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시기적인 개념이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1844년부터 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령의 인은 어느 시기와 어느 시대에 관계없이 믿는 자들에게 쳐지는 인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영혼들에게 구원의 보증으로 쳐지는 성령의 인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에게 쳐지기 시작한 이래 오늘날까지 모든 성도들에게 쳐지는 인이다.
왜냐하면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에게는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 이후 시기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영혼들에게는 모두 성령의 인침이 있으며 이들은 구원받은 허다한 무리들에 속하는 것이다.
둘째,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1844년 이후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에게만 쳐지는 인이다.
1844년 이전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치는 사업이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령의 인은 셋째 천사의 기별도 모르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도 쳐지는 인이다.
그러므로 계시록 7장 2절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성령의 인과 구별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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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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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 십사만 사천명은 죽음을 맛보지 않는 자들로 구성될 것이 아닌가?
답변 : 십사만 사천인은 죽음을 맛보지 않는 자들로 구성될 것이라는 내용의 말씀은 성경과 예언의 신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신실하게 살다가 죽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인에 포함될 것이라는 내용의 말씀과
또 그렇게 포함되어야 할 이유들은 성경과 예언의신의 말씀으로 많은 증거를 보았기에 지금은 왜 십사만 사천인은 죽음을 보지 않은 자들이라고
하는 견해가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두 가지 요인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첫번째 요인 : 아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되었다.
“그 노래는 십사만 사천 명 외에 아무도 부를 수 없는 노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체험의 노래, 곧 다른 어떤 사람도 체험하지 못한 경험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서 땅으로부터 끌어 올림을 받은 사람들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648.
“… 그런데 144,000인은 살아있는 성도로서 그리스도의 재림시애 변화될 자들이다.” -다니엘서 연구 629 (우라이야 스미스 저).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의 두려운 광경들 가운데서, 이곳 지구상으로부터 하늘 창고에 드릴만큼 여물었고,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변화 승천하고
탁월한 지위를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144,000인은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처음 익은 열매라고 부르는데는 아무런 모순도 없을 것이다.”
-다니엘서 연구 631 (우라이야 스미스 저).
십사만 사천인들은 “살아있는 자들 가운데서 땅으로부터 끌어올림을 받은 사람들이다.(대쟁투648)”라는 말씀과
그리고 우라이아 스미스의 다니엘서 연구 629, 631페이지의 말씀을 오해한데서 비롯되었다.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변화 승천하고”라는 말씀들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의 전후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 말씀의 배경은 이렇다.
“나는 한 문서가 여러 장 복사되어 세상 각처로 전달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문서의 내용은 성도들이 만일 그들의 특수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안식일 대신 주일 중 첫째 날을 지키지 않는다면 특정한 기간 이후에 그들을 죽여도 무방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의 기간에도 성도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들을 위하여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을 의지하는 가운데 태연자약하였다.
어떤 곳에서는 그 법령이 시행되기도 전에 악인들이 성도들을 학살하기 위하여 밀어닥쳤다. 그러나 천사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그들을 위하여 싸웠다.
사단은 지존자의 성도들을 실망시키려 했으나 예수께서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보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보는 가운데 그의 율법을 지킨 자들과 언약을 맺으심으로 존경을 받으실 것이며
예수께서는 자기를 오랫동안 기다리던 신실한 자들이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됨으로써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초기문집, 282-283.
“엘리야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지상에 살아 있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할 성도들을 예표하였다.” -선지자와 왕, 227.
여기에서 “자기를 오랫동안 기다리던 신실한 자들이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됨으로써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라는
말씀을 144,000인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은 자들로 구성될 것이라고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요 야곱의 환란 때에 있을 위기일발의 위급한 상황을 묘사 한 말씀이다.
“성도들이 도시와 마을을 떠날 때 그들을 죽이려는 악한 자들이 추격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려고 치켜든 칼이 부러져 지푸라기처럼 힘없이 떨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천사들이 성도들을 보호할 것이다.
그들이 밤낮으로 구원을 위하여 부르짖을 것이며 그들의 간구가 주님 앞에 상달될 것이다.”(초기, 284)
야곱의 환란 때에 모든 성도들을 죽이라는 사형 선고가 내린 상황 아래에서 폭도들은 법령이 시행되기도 전에 성도들을 학살하려고 할 것이나
죽음을 맛보지 않고 천사들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 위기일발의 극적인 상황을 묘사하신 말씀이다.
두번째 요인 : 시기를 정하는 자들의 영향을 받음
1894년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한 여인의 거짓 계시를 믿는 광신자들에 의하여 그러한 가르침이 공표되었다.
그들이 믿는 바, 144,000의 견해 가운데는 144,000인들은 죽은 자들은 포함되지 않으며 주님의 재림 시에
살아있는 자들로만 구성된다는 견해를 전하였고 당시 사람들에게 크게 공감을 얻게 되었다.
특히 이 거짓 계시자는 화잇 부인도 자신의 계시에 동의했다는 말까지 유포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인상을 심어 주었다.
(나중에는 화잇 부인이 그의 계시를 동의 했다는 말은 거짓이었음이 밝혀짐) 그러므로 화잇 부인은 이 거짓 계시자의 전모를 이렇게 기록하셨다:
“내가 겪어야 했던 가장 어려웠던 일은 주님을 따르기 원했던 자로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을 다루는 일이었다.
한동안 그는 자기가 새로운 빛을 받고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매우 중병에 걸려 있었으며 불원간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 나는 그가 행하고 있는 일에 관하여 내가 말할 필요가 없게 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그의 증거하는 견해들을 들은 자들은 매우 열중하였으며 어떤 이들은 그가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하나의 도표를 만들었으며 내가 기억하기로는 1894년의 어떤 날에 주님께서 오실 것을 성경을 가지고 추리하였다.
그의 논법 중 대부분이 결함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말을 따르던 자들은 그의 병실에서 들려오는 강력한 권고들을 귀담아 들었다.
그는 가장 놀라운 광경들을 보았다. 그러나 과연 그가 받은 영감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고통을 완화시켜주기 위한 모르핀 진통제의 영향 때문이었다.
내가 호주로 오기 직전에 미쉬간 주의 랜싱 시(市)에서 개최된 장막 집회에서 이 새로운 빛에 관하여
말해 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신자들에게 저들이 들은 말들이 영감으로 된 진리가 아니었음을 말해 주었다.
진리의 외관을 보여준 놀라운 빛은 성경 말씀을 오용한 결과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주님의 사업이 1894년에 끝을 맺을 것이 아니었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임하였는데, “이것은 진리가 아니며 다만 낯설은 길로 인도할 뿐
이러한 증거로 말미암아 어떤 자들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며 그 결과로 믿음을 저버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가려뽑은 기별 2권, 113.
그러므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는 144,000인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성경과 예언의 신에서 가르치는 진리가 아니다.
그리고 시기를 정하는 그들에 의하여 전하여졌던 이와 같은 잘못된 144,000인의 새로운 빛은 오류임이
동시대의 재림교회의 목사였던 라포보로우 목사에 의하여 증거 되었다. (J. N. 라포보로우 목사의 견해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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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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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 하스팅부인이 144,000인들과“함께”(with), 있을 것이라는 말은 수효에 포함 된다는 의미인가?
답변 : 함께(with)라는 말씀은 144,000인에 포함 되는 것이 아니라,
144,000인은 따로 있고 글자 그대로 144,000인들과 함께 있는 추가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래의 말씀을 그렇게 해석함으로 죽은 자들이 144,000인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나는 수행하는 천사에게 나를 그 속에 남아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이 어두운 세상으로 돌아올 것을 생각하니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그 때 그 천사는 ‘너는 돌아가야 한다. 만일 네가 신실히 행하면 십사만 사천인과 함께 모든 세계들을 방문하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구경할 특권을 누릴 것이다.’ 라고 말해 주었다.” -초기문집, 40.
“나는 그녀(하스팅 부인:역자주)가 인 치심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와 땅 위에 섰으며
그가 144,000인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가려뽑은 기별 2권, 263.
이 문제는 이미 앞에서 연구 되었기에 다만 이 기회에는 이런 영적인 문제들을 문자적인 해석으로 단언해버리는 경솔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싶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함께”(with)란 단어를 사용한 유사한 사건들의 실례들을 볼 수가 있는데,
오히려 추가된 수효가 아닌 그 수효에 포함되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말씀을 실례로 들어 보겠다.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요 20:24).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12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도마는 12제자들과 “함께” (with)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12제자와 함께(with) 도마는 있지 않았다는 말씀이 12제자는 따로 있고 도마는 12명 제자들 외에 추가된 제자라는 말인가?
아니다. 분명 도마는 12제자의 수효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화잇 부인이나 하스팅 부인이 인침을 받고 144,000인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 144,000인 수효에 포함되는 것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또 “가운데”(among)이라는 단어로 한번 실례를 들어 보자.
“그들은 거룩한 십계명 중에 넷째 계명이 다른 아홉 계명보다 더 밝게 빛나고
그 주위에 영광스러운 광채가 서리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떨면서 뒤로 물러섰다.” -초기문집, 255.
십계명 중에(among) 넷째 계명이라는 말은 십계명이 따로 있고 넷째 계명이 추가되는 것이 아니고
십계명에 넷째 계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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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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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4 : 144,000인은 야곱의 환란을 통과해야 하는데 어떻게 죽은 자들이 포함될 수 있는가?
답변 : 144,000인들은 개국이래로 없던 야곱의 환란을 통과해야 하는데 죽은 자들이 어떻게 환란을 통과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들은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의 시기를 지내고, 야곱의 환난을 견디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마지막으로 내릴 때 중보자 없이 선자들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649.
이 문제는 이미 연구 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간단한 설명으로 대신하겠다.
우리는 특별 부활이라는 사건을 상기할 것이다. 일곱째 재앙 초기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하여
지진과 우박이 떨어질 때, 특별한 죄인들과 함께 무덤에서 일어날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자들의 부활이다.
이때의 상황은 일곱 가지 모든 재앙이 누적되어 있는 상태이기에 특별부활에 일어난 의인들(144,000인)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재앙들을 목도하며 환란을 통과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야곱의 환란을 통과한 자들이라는 말씀에는 어떤 문제도 없다.
144,000인들 이란 명칭은 한 무리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됨
144,000인들의 경험은 동일하지 않다. 왜냐하면 144,000인들은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첫째―넷째 재앙은 전 세계적인 것이 아니요 국부적인 것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144,000인들의 일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재앙을 똑같이 목도하거나
환란의 경험들이 동일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특별부활에 참여한 자들의 경험이 다를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말씀에는 그들은(144,000인) 재앙을 목도하고 환란을 통과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 까닭은 144,000인들은 일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했다 할지라도 어느 개인의 경험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144,000인들의 공동체의 이름과 경험으로 일컬어 말씀하신 것이다.
“각 나라에 흩어져 있는 이 땅 거민들 중에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다.” -선지자와 왕, 188.
“그 재앙들은 전 세계적인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지상의 거민들은 완전히 전멸될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628.
뿐만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는 144,000인들은 완전한 수효가 아닌 일부의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더라도
저들은 144,000인들이라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호칭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유사한 경우의 말씀을 찾아보자.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12명이 모두 모였든지 아니면 일부의 제자가 모였든지 열두 제자라는 이름으로 호칭되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고전 15:5-6).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요 20:24).
이 말씀의 경우는 모두, 가룟 유다와 도마가 빠진 열 명의 제자들만이 있었을 때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열 명의 제자라고 말하지 않고 열두 제자라는 공동체의 명칭으로 호칭되었다.
그러므로 144,000인들 중 일부분의 경험이라 할지라도, 144,000인들의 모두의 경험처럼 묘사하는 것에
문제가 없는 것은 이미 144,000인들이란 한 무리들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특별부활에 일어난 사람들, 곧 144,000들의 일부가 되는 사람들의 경험이
모든 재앙을 통과한 144,000인들의 경험과 다르다 할지라도 문제를 삼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말씀에는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서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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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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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 : 144,000인은 상징적인 수효가 아닌가?
답변 : 이 문제는 이미 소상하게 연구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간결하게 말하고자 한다.
계시록 7장과 14장에 기록된 144,000인들에 관한 진리는 그 수효에 있어서는 사람들의 설명과 어려운 해석이 필요하지 않다.
성경의 말씀 자체가 이미 설명을 모두 하고 있으며 오히려 인간들의 어떠한 개입도 허락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보도록 하자.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4).
이 말씀에 인간의 해석이 필요한가? 요한이 잘못 들었을까? 그렇다면 4절 이하의 말씀을 보라.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서 12,000명 계산까지 나와 있다. 12 곱하기 12,000은 얼마인가?
144,000인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다시 계시록 14장을 보자.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계 14:1).
음성으로 들려주었던 7장과는 달리 14장에는 요한에게 144,000인들을 보여주었다.
확실한 증거가 아닌가? 듣고 보았으니까 말이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3).
“유리 바닷가에는 144,000명이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서 있었다.” -초기문집, 16.
요한이 혹시 잘못 보았을까? 그렇다면 다시 말씀을 자세히 보자.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 14:3) 어떤 토론의 여지도 말씀은 허용하지 않는다.
“144,000인밖에는”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화잇 부인의 첫 계시에서도 유리바닷가에 서있는 144,000인들의 정사각형의 모습을 보았다.
정확한 수효를 계산할 수 있는 대열의 모습을 본 것이다.
실제적 수효임을 부인할 수 없다. 화잇 부인의 말씀들을 보자:
“생사 간에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 사업을 마치시고 그들의 죄를 도말하셨다.
주님의 백성의 수효는 찼다.” -각 시대의 대쟁투, 613-614.
“예수님의 중보 사업이 끝난 후 그 두려운 시간에 성도들은 중보자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었다.
모든 상황은 결정되었고 모든 보석은 헤아려졌다.” -초기문집, 280.
“나는 천사들이 하늘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한 천사가 잉크 통(뿔로 만든)을 가지고 지구에서 돌아와
예수님께 자기의 일이 끝났음을 보고하고 성도들의 수가 차서 인치는 사업이 마쳤음을 보고했다.” -초기문집, 279.
144,000인의 수효가 실제적인 수효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천사들이 수효를 세고 있었는가?
이처럼 확실한 말씀을 상징으로 말한다면, 앞으로 주님의 재림도 상징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144,000인은 상징이 아니요 확실한 실제의 수효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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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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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6 : 144,000인들과 첫째 부활에 일어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서로 알고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는가? 저들은 누구인가?
답변 : “이어서 굉장한 지진이 일어나더니 무덤이 열리면서 죽었던 자들이 썩지 않을 몸으로 일어났다.
144,000명이 사망으로 인하여 갈라져 있었던 저희 친구들을 알아보고 큰소리로 ‘할렐루야!’ 라고 외쳤다.
그와 동시에 우리도 변화되어 주를 영접하기 위하여 그들과 같이 공중으로 이끌려 올라갔다.” -초기문집, 16.
이 말씀을 가지고 이상한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위의 말씀의 경우는 두 가지의 경우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의 경우는 1844년 당시의 상황을 실례로 들어 보겠다.
1844년으로 돌아가서 10월 22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잠들었던 핏치와 스톡크만 형제들과 셋째 천사의 기별을 듣지 못하고 신실하게 믿고
구원받은 윌리암 밀러 등 당시의 형제자매들을 화잇부인이나 죠셉 베이츠, 화잇 목사 등은 잘 알고 있는 사이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첫째 부활에 일어날 때, 특별부활에 먼저 일어나 144,000인들의 무리에 속하여 있던 화잇부인이나 죠셉 베이츠, 화잇 목사님이 그들을 만나
서로를 알아보고 반가워서 할렐루야 하고 외치는 장면이다. 아래의 말씀 속에서 그 장면을 볼 수 있다.
“그 때 천국 복음을 전하다가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무덤에 잠재우셨던 핏치와 스톡크만 형제가
우리에게로 와서 그들이 잠자고 있는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물었다.” -초기문집, 17.
두번째의 경우는 하나의 실례를 들어 설명을 해보겠다.
갑과 을이라는 개신교회에 다니는 신실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자.
그런데 갑이 어떤 일로 믿음 안에서 잠이 들고 을은 그 이후 안식일 진리와 셋째 천사의 기별을 깨닫고
받아들여 신실하게 믿다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144,000인의 대열에 참가한다면 어떤 일이 연출될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 아침 예수님의 음성에 의하여 갑의 친구인 을이라는 사람이 허다한 의인들과 함께 부활할 때
144,000인들에 속해있는 갑은 을을 알아보고 서로가 기뻐하여 할렐루야 하고 외치며 기뻐하는 장면을 연상해보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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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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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7 : 144,000명에 대한 문제에 관하여는 침묵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는가?
답변 : 화잇 부인의 아래의 증언을 인용하여 마치 144,000명의 진리는 연구해서 안 되는
오묘에 속한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이 주제를 연구하기를 두려워하고 무관심 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 논쟁을 벌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신 선지자의 말씀의 진의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사람들이 이 이론 혹은 저 이론을 선택하며 저들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하여
알고 싶은 호기심을 갖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일이 아니다.
그분의 백성들이 상상의 힘을 빌어야 하고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들을 증거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계획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십사만 사천인에 속하게 될 것인가 하는 등의 영적으로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문제들을 가지고 신자들이 논쟁을 벌이게 되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잠시 후에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 -가려뽑은 기별 1권, 174.
상상의 힘을 빌리고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은 것, 곧 어떤 사람이 144,000인에 속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에 성경과 확실한 증언의 말씀이 있었으나, 그런 확실한 주제들은 뒷전으로 하고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상상력과 추측에 의해서만 가능한 144,000인에 관한 많은 논쟁들이 있었다.
당시의 논쟁들을 살펴보면 B. E. 풀머 박사와 그 외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논쟁들이 문제를 가져왔다.
-144,000인들은 미국 사람들로만 구성될 것이다.
-144,000인들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로만 구성될 것이다.
-144,000인들은 유대인들로만 구성될 것이다.
-144,000인들은 다른 교파에 속하지 않았던 순수한 무리들로 구성될 것이다.
-144,000인들은 죽은 자들은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등등.
성경과 증언의 말씀으로 증거 되지 않고 다만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추측과 상상의 힘을 빌려 논쟁을 일으킬 때 화잇 선지자께서,
“어떤 사람이 십사만 사천인에 속하게 될 것인가 하는 등의 영적으로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문제들을 가지고 신자들이 논쟁을 벌이게 되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들이 연구한 주제는, 셋째 천사의 기별은 인치는 사업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자는 144,000명이요, 이 인치는 사업은 1844년부터 시작 되었으며, 죽은 자 가운데도 인 받은 자들이 있으며,
그들은 특별부활에 일어나 살아서 주님의 영광스런 재림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 진리는 상상력으로 추측하는 것이 아닌 확실한 진리인 것이다.
이 주제는 영혼들의 운명이 달려있는 중요한 주제들인 것이다.
오히려 오늘날의 문제는 확실한 이 주제들을 연구하지 아니하는 데 있고 이런 현상은 진리를 무력화시키려는 사단의 기만에 의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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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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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8 : 144,000명에 대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치는 기별이 참으로 변경되었는가?
답변 : 먼저, 1930년대의 한국교회에서 144,000인에 관한 진리를 어떻게 가르쳐 왔는지 역사를 찾아보도록 하겠다.
1932년에 출판한 요한계시록연구 교재에는 분명히 지금까지 우리들이 연구한 것과 동일하게
144,000인의 진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진리는 변경된 것이 확실하다. 아래의 자료들을 읽어보라
다니엘과 요한계시록 강해서
어떤 사람들은 당시의 요한계시록의 연구 교재는 우라이야 스미스 목사의 저서이기에
그 책은 영감 받은 선지자의 글이 아니므로 완전하지 못하며 변경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진다.
그렇다면 화잇 선지자의 말씀을 보도록 하자.
“‘시대의 소망’, ‘부조와 선지자’, ‘각 시대의 대쟁투’, ‘다니엘과 요한계시록 강해’ 등의 책들에는 귀중한 교훈들이 있다.
이러한 책들을 특별히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며, 사람들이 그 책들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서신 229, 1903년
“교회들을 일깨우게 될 한 가지 기별이 전파되어야 한다.
그 빛을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에 비추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소책자로 인쇄하여 필요한 설명을 함께 담아 온 세상에 배포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목사와 복음사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117.
화잇 선지자 당시에 다니엘과 요한계시록 강해서가 우라이야 스미스의 저서 이외에 무슨 책이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라.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144,000인의 진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그대로 그분의 강해를 가르치고 있다.
화잇 선지자가 요한계시록 강해서를 소책자로 만들어서 온 세상에 배포해야 한다는 그 책은 바로 우라이야 스미스 장로의 저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라이야 스미스 장로의 저서는 비록 직접적인 계시나 영감을 받은 선지자의 글이 아니라 할지라도 영감 받은 선지자에 의하여 추천받아
온 세상에 전파해야 하는 영감적인 말씀이라면, 곧 그 말씀도 영감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 중에 가장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성경 66권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요한계시록의 가장 핵심적 진리는 성경의 가장 중요한 진리가 된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는 무엇인가? 셋째 천사의 기별이라는 주장에 이의가 없을 줄로 믿는다.
셋째 천사의 사업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치는 사업이요, 셋째 천사에 의하여 144,000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고 바로 이 땅에서 추수되는 구속의 첫 열매들이 탄생된 것이다.
이처럼 구속사업의 결론이요 성경의 핵심 진리가 될 수 있는 144,000인의 중대한 진리만이 변경시켜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스미스 장로의 144,000인의 가르침과 화잇 선지자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연구한 바에 의하여
동일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십사만 사천인의 견해를 변경시킨 것은 참으로 큰 잘못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2:18-2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144,000인 가운데 들도록 힘써 노력하자(리뷰 1905. 3. 9).”
-화잇주석, 계 7: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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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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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9 : 구원받는 수효가 그렇게 극소수인가?
답변 : 십사만 사천인, 세 천사의 기별로 구원 얻는 무리가 그렇게도 극소수인가? 라는 항의성 질문은 아직도
쇄도 하고 있다. 마치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무리들의 인원을 제한하시는 것 같은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1844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인 무리들의 수효가 얼마나 되는지를 재림교회의 역사자료를 챙겨 보면서,
그리고 약 1,300만 명의 거대한 재림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자신의 구원의 확률을 따져 본 후에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마치 소수의 학생을 선발하는 명문대학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학생이 그 대학을 지원하는 학생의 수효가 많음으로 과연 저 많은 학생들을 제치고 내가 입학할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난감해 하는 학생과 같다. 모든 학생들이 자신과 경쟁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연구하지 아니하고 극히 인간적인 상식으로 진리를 해석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이 있다. 세 천사의 기별로 구원 얻는 무리가 십사만 사천인이 아니요 1억 4천 4백만 명이라면 구원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어지는가?
아니면 십사만 사천인이 헤일 수 없는 상징적인 수효라고 한다면 마음이 편안해지는가?
아마 그렇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감정과 느낌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도록 이끄는 사단의 방법이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도 이런 사단의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하나님은 자비하시니까 선악과 하나 따먹었다고 멸망시키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느낌을 가졌다.
이것이 추측하는 모조 믿음이다.
“그처럼 당신의 사랑에 대한 많은 증거를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한번의 범죄는 용서해 주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두려워했던바 그렇게 무서운 형벌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부조와 선지자, 57.
구원의 확률
하나님께서는 시간에 쫓기어 자격이 없는 사람을 구원의 반열에 참가 시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 시대에 구원받을 영혼들의 수효가 차지 않으면 이 세대는 모두가 또 광야에서 잠들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한 세대를 일으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숫자의 많고 적음이 나의 구원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주신 빛에 따라 심판 하신다. 아담이후 1844년까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성도들과 그리고 그 이후라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인
안식일을 모르고 주어진 빛대로 믿음을 따라 구원에 참여할 오늘날 개신교회 성도들은 헤일 수 없는 무리들 중에 속할 것이요,
1844년 이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인 안식일을 깨닫고 충실하게 믿음으로 생애한 재림성도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고 십사만 사천인들의 구성원이 된다.
그러므로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로 구원을 받는다면 십사만 사천인의 특권을 누릴 것이요
그렇지 못하다면 구원에 탈락이라는 이 엄청난 사실을 빨리 깨닫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셋째 천사의 기별인 이 인치는 진리를 확실히 이해한다면 모두는 영적 졸음에서 깨어날 것이요
믿음의 각오는 달라 질 것이다.왜냐하면 셋째 천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치는 천사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무리는 십사만 사천인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십사만 사천인에 들어가지 못하면 헤일 수 없는 무리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차등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사단의 기만 이다.
마치 명문대학에 들어갈 실력이 부족하면 수준이 낮은 대학에 들어가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단은 이처럼 확실한 진리를 버리게 하고 십사만 사천무리들을 상징적인 숫자라고 말함으로 재림성도들의 마음을 느긋하게 만들어 버렸고
믿음은 뜨뜻미지근하게 되고 말았다. 사단이 주는 거짓 평안인 것이다.
그러나 십사만 사천인들의 수효가 차는 그날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운명은 결정되고 만다.
하늘에서 다음과 같은 엄숙한 선고가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천사들이 하늘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한 천사가 잉크 통(뿔로 만든)을 가지고 지구에서 돌아와 예수님께 자기의 일이 끝났음을 보고하고 성도들의 수가 차서 인치는 사업이 마쳤음을 보고했다.
그러자 나는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 앞에서 봉사하시던 예수께서 향로를 내던지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의 손을 치켜들고 ‘다 이루었다’하고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고 엄숙하게 선포하실 때 모든 천사들은 그들의 면류관을 벗어던졌다.”-초기, 279-280.
확실한 이유
확실한 것은 구원받는 무리가 극소수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노아의 때와 롯의 때와 같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도덕적인 관점에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매 시대마다 구원받은 무리가 극소수였다는 사실에도 주목하여야 한다.
노아 할아버지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엄숙한 기별을 듣고 방주를 만들었다.
방주에 들어가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었다. 그러나 노아의 여덟 식구 밖에는 아무도 방주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 외 모든 사람은 멸망을 당했다.
그러면 그들이 왜 멸망을 받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홍수 때문에 멸망을 받았는가? 아니다.
그들은 홍수 때문에 멸망 받은 것이 아니라 방주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을 당했다.
그러면 왜 방주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배가 한 척 밖에 없어서 비좁아서 탈 수 가없었는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불신 때문에 방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확실한 이유이다.
오늘날도 만약 재림 성도들이 구원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십사만 사천인들의 수효가 적어 자리가 없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확실한 진리를 믿지 않고 불신 하므로 구원과 특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소돔성의 멸망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소돔성에 많은 의인들이 있으리라고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그곳에 의인 50명을 찾으면 용서 하실 수 있는지를 하나님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허락을 받았으나 의인 오십을 찾지 못하였고 결국은 의인 10명을 찾지 못하여 그 성은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예수님께서도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로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셨다.
당시 이스라엘백성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로 비유되었다. 그 누가 이 나무에 열매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처럼 무성하고 큰나무에 열매가 없다는 것은 누가 상상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나무에 열매를 찾았으나 열매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백성인 재림을 기다리는 백성은 어떤가?
1844년 이후 이미 잠든 재림성도들이 얼마나 되며 현재 약 1,300만 명이나 되는 거대한 무화과나무에
아직도 십사만 사천인의 열매가 없다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렇게 구원 얻기가 어렵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것인가? 라고 부르짖는다.
마치 예수님 당시 많은 무리들처럼 말하기를,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 6:60, 66)고 한 역사를 교훈이나 삼은 듯이 오늘날 교회들은 이것을 염려한 나머지 신자들을 잠재우는 설교들을 하고 있다.
이미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감히 예수와 성경상의 명료한 진리를 설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게 되면
이 육적인 신자들이 교회 안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초기문집, 228).
예수님께서는 돌아가는 무리들을 보시고 말 할 수 없는 연민의 정으로 측은하게 보셨으나
그들을 붙잡아 두기 위하여 명료한 진리를 감추시는 일은 없었다. 오늘날 교회는 사단의 기만에 속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명료하고 확실한 진리보다는 귀를 즐겁게 하는 복음들이 교회 안에 난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돌아가는 다수의 무리를 위하여 진리를 변개 시키거나 표준을 그들의 수준에 맞도록
낮추시지 않으실 것이며 준비되지 못한 영혼들로 하늘을 채우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극소수의 무리가 구원을 받음
매 시대마다 극소수만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확실한 진리의 말씀보다는 당시의 전통이나
상식화된 신학과 맹목적으로 지도자들의 말을 더 신뢰하였던 것이 극소수만이 구원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역사를 간과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노아 당시의 사람들처럼…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관습, 습관, 전통을 답습할 위험이 언제나 있다. …
‘주께서 말씀하신다.’고 한 분명한 말씀에서 떠나 인간의 이론과 교훈으로 향하게 된다.
오직 성령의 능력만이 영적 사물들을 드러내 줄 수 있음 에도 불구하고, 무한하고 영원한 진리,
곧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이 해석하는 빛에 의하여 설명된다.” -증언보감 2권, 423.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벧전 3:20).
“거룩한 여인과 그 자손들로 상징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극소수라고 한다. 마지막 때에 남은 자손이 여전히 있을 것인데,
이 사람들에 대해서 요한은 말하기를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하였다 (사인즈 1899. 11. 1).” -화잇주석, 계 12:3-6.
“온 하늘은 예수님과 연합하였으며 그들은 ‘다 이루었다’하는 두려운 소리를 들었다.
구속의 경륜은 성취되었으나 그것을 받아들인 자는 극소수였다. 부드러운 자비의 음성이 사라지자 두려움과 공포가 악인들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들이 두려워 떨면서 ‘너무 늦었다! 너무 늦었다!’하고 외치는 분명한 소리를 들었다.” -초기문집, 281.
잘못된 항의
노아는 120년 동안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보냈다. 홍수가 나서 이 세상이 멸망 받을 것을 외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산 위에서 한척의 방주를 지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많은 배를 만드시지 않으시고 한척의 배만을 짓도록 하셨을까?
당시의 인류가 오늘날 인구보다 적지 않는 많은 인류가 살고 있었다.
그 많은 인류를 위하여 한척의 배 만을 준비하시다니!
그렇다면 이런 일이 이러날 법도 하지 않았을까? 홍수가 내리면 구원 얻을 방법은 오직 이 한척의 방주에 들어가는 길 밖에는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노아 할아버지에게 몰려와 선착순으로 자신이 먼저 이 배를 타게 해달라는 청탁이 쇄도하고 어떤 이는 거액의 돈을 가지고 와서
자신과 가족이 선착순으로 방주를 탈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 하는 사람들로 산위에서는 법석이 일어 날 것이다.
노아 할아버지는 견디다 못해 하나님께 방주를 더 만들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상황이 일어나야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20).
하나님께서는 그 한척의 배에 채울 승객도 찾지 못하시고 겨우 노아의 여덟 식구만을 태웠을 뿐이셨다.
과연 당대의 어떤 사람이 질문하기를, '하나님께서 홍수를 내리시는 것이 진실이라면
왜 많은 배를 만들지 않고 한척의 배만을 지으십니까? 이 한척의 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탈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비가 없으신 분이 신가요? 이 많은 사람이 모두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라고
노아 할아버지에게 항의의 질문을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한 가지 질문에 그들은 먼저 대답 하여야 한다.
당신은 한척의 배가 비좁아서 타지 못하셨던가요?
왜 십사만 사천인인가?
오늘날도 같은 질문이 쇄도 하고 있다. 왜? 겨우 십사만 사천인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인가?
오늘날 재림교회의 신도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왜 십사만 사천인의 인원제한을 두시는가? 그렇다면 나는 일찌감치 구원을 포기하고 말겠다는 협박성 질문에 의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기가 죽는다.
재림 성도들이여, 십사만 사천인의 수효가 너무 적어서 자격은 있으나, 자리가 없어 구원을 포기해야 할 형편이라고 생각하는가?
스스로 속이지 말자. 주님께서는 1844년 이후 아직까지 십사만 사천인의 수효를 채우지 못하여 오늘도 하늘 지성소에서 손을 들고 계신다.
정확하게 지금으로부터 109년전 화잇 선지자가 생존하여 계실 당시이다.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현재 녹명책에 기록된 20명중 한 사람도 영원을 위하여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고 개탄 하였다.
오늘날에 비교하여 당시의 재림교회의 신자들은 얼마나 경건하며 신앙심이 깊었는지는 과거의 역사와 세대의 변천사를 연구해 보면 알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재림교회의 녹명책에 기록된 성도들은 몇 명중에 한명이 준비되어 있을까를 생각해 보라.
더군다나 인치는 천사의 기별의 중요성과 구속의 경륜을 무시해 버리고 일반 개신교회들처럼
구속의 열매들인 십사만 사천인 들을 상징적인 수라고 가르치는 재림교회의 현실을 생각해 보라.
“나는 교회를 향하여 엄숙한 말을 한다. 현재 교회 녹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이십명 중 한 사람도 그들의 지상에서의 생애를 마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진실로 일반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는 자와 같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 선교봉사, 41 (1893년).
십사만 사천인들의 품성은 흠과 점이 없는 완전한 품성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실수효인 구속의 열매들, 곧 십사만 사천인들을 상징적인 수효인양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십사만 사천인의 구원이 아닌 헤일 수 없는 구원을 기대하는 무리들이 있는가 하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도 그 목표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복음은 십자가의 공효와 능력으로 신자들을 성소의 첫째 칸을 지나
지성소에 이르는 그리스도인의 목표인 품성의 온전함으로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과 점이 없어야 하는 품성완성의 목표 지점인 지성소의 복음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믿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야 할 신자들을 성소의 뜰과 첫째 칸에 머물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두는 십사만 사천인의 힘 있는 교리가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결과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지성소를 정결케 하고 회복하는 기별이며 재림교회의 사명과 존재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성소의 빛을 받은 자들이 성소의 첫째 칸과 뜰에 머물러 있다면 어찌 구원을 받을 것인가? 신자들은 주어진 빛에 의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성소의 저울로 달려질 것이다. 그 교회는 받은 바 특권과 이점(利點)에 의하여 판정을 받을 것이다.
만일 그 교회의 영적 경험이 그리스도께서 무한한 대가로 그에게 준 특권에 일치하지 못한다면 … ‘부족함이 뵈었다’는 선고가 그에게 내릴 것이다.” -교회증언 8권, 247.
“주님께서는 나에게 귀중한 영혼들이 현대진리 곧 인치는 진리와 때에 적당한 식물의 부족으로 굶어 죽어가고
있음과 또한 신속한 사자들이 저들의 길을 달려가서 현대진리로 양떼를 먹일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나는 한천사가 ‘빠른 사자들아 급히 가라’ ‘빠른 사자들아 급히 가라 ’ 고 말하는 것과 모든 영혼의 운명은
생사간에 각각 신속히 결정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현대진리 1권, No. 3, p. 3.
지성소의 빛을 받지 못한 일반 개신교회의 심판과 지성소의 빛을 받은 재림교회의 심판의 척도가 결코 같을 수 없는 것이다.
지성소의 요구가 무엇인가? 죄짓지 않는 완전한 생애와 흠과 점이 없는 품성이다.
이런 품성의 소유자들이 십사만 사천인이 될 때 우리 주님은 중보의 향로를 던지시고
지성소를 나와 이 땅에 재림 하시는 것이다. 이 분명한 진리를 교회는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런 분명한 진리를 버리고 마치 토요일 안식일만 지키고 믿기만 하면 만인이 구원받기라도 하듯이 일반적인 복음을 전하고 있다.
교회가 재림교회의 존재의 목적과 사명을 잊어버리고 명목상의 신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이처럼 명료한 진리를 무너뜨리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할 수가 있을까?
토요일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여 모두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은 아니며
그리고 인침 받은 십사만 사천인의 수효가 차지 않으면 예수님은 오실 수 없기 때문이다.
침노하는 자들만이 들어감
아직도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온 마음과 뜻을 다 바치는 자들을 위해 십사만 사천인의 한 자리가 남아 있음을 감사하자.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여기에 침노한다는 말은 온 마음을 다한다는 것을 말한다.
두 마음을 품으면 안정이 없다. 준비하는 일을 하려면 결심, 자아 부정, 헌신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화잇주석, 창 32:26.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람들 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날에 쓰라린 실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뜨뜻미지근하고 반만 마음을 바쳤기 때문에
공공연한 불신자보다 휠씬 더 하나님께 욕을 돌린다.” -편지, 121, 1903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악한 기질들을 정복하고자 바라고 소원만 하다가 멸망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의지를 하나님께 굴복시키지 않는다.” -가정과 건강, 139.
“우리는 단호하며 전심 전력하는 그리스도인이거나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닌 존재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 16).
나는 어떤 이들이 아직도 자기 부정이나 희생이 무엇인지,
혹은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거의 알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희생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늘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자기부정과 희생의 정신을 품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제단 위에 그들, 즉 그들 자신의 몸을 바치지 않았다.” -증언보감 1권, 2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144,000인 가운데 들도록 힘써 노력하자”
-리뷰 앤드 헤랄드, 1905.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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